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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박태건/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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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태건
개미 떼의 원주율
개미 떼가 오후 세 시를 물고 간다. 참치 캔을 지나 음료수 깡통까지 오후 네 시를 구부려 간다. 개미 떼가 몰려간 네 시 너머엔 병정개미가 있다. 개미 여왕은 찌그러진 깡통의 나라에 개미 떼를 불러 모았다가 토해 놓는다. 누구나 찌그러진 만큼의 경험을 힘으로 갖는다. 동전을 넣은 그만큼의 음료가 나오는 자판기의 법칙이다. 개미왕국의 오래된 전통이자 왕국을 유지하는 규율이다.
달달한 것을 입에 묻힌 채, 한 무리의 개미 떼가 음료수 캔 밖으로 기어 나온다. 흐느적거리는 걸음엔 규율이 없다. 강철 캔 속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개미의 시간들이 토해진다. 검은 모래처럼 개미 떼가 돌 틈으로 사라진다. 어딘가에 있을 그들의 보금자리, 여왕의 왕국에서는 한 방울의 달콤한 기쁨으로 고단함을 견딜 수 있다. 지난 일은 깨물어지지 않는다. 경험에 취해, 강철 캔 속의 컴컴한 추억을 회고하며 몰려갈 뿐. 오후 여섯시 학원버스에서 내린 한 아이가 텅 빈 운동장 안으로 깡통을 날려버린다. 개미 부족의 幻이 포물선을 그린다. 지구의 원주율이,
옛 비
내 앞에
옛 비가 눕는다
두터운 유리로 덮힌 4인용 식탁이다
희디 흰 접시 위다
허기진 젓가락이 옛 비의 속살을 헤집어
지느러미를 집어내고 뼈를 발라
옛 비의 기억을 바른다
비린내는 오래될수록 지독하고
회고담은 집요할수록 왜곡 된다
비로소 살아나는
옛 비의 속살.
거친 바다를 헤엄치며 스스로 단련된 가시가
제 살을 파고드는 줄도 모르고
비린내는 비린내의 품에 안긴다
옛 비의 여린 혀는 비밀을 찾아 먼 바다로 갔다고 했다
나는 까닭 모를 슬픔에 못 이겨
4인용 식탁에서 일어선다
흰 접시 위에 무장 해제된
옛 비를 어쩌지 못하고
옛 비,
**약력:익산 출생.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와반시》 신인상.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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