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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권순/그날 아침·1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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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94회 작성일 16-09-0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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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I

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

권순

 

 

 

 

그날 아침

 

 

칼등에 피가 묻었다

껍질이 벗겨진 그가 도마 위에 눈을 내리깔고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꼬리 쪽부터 잘랐다

뼈가 드러난 살에 피가 흐르고

칼날이 번뜩이면 붉은 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죽은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다

붉게 물든 내 손을 보고도 말리지 않았다

자꾸 생목이 올랐다

 

뼈와 칼날이 부딪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고

밤새 잘라도 긴 몸통을 다 자를 수 없었다

 

중심은 쉽게 잘라지지 않았다

 

칼자루를 쥔 손에 검붉은 땀이 흥건했고

오금이 저렸다

돌아가려 해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밖에는 생나무에 물이 오르고

나뭇가지마다 바람이 다녀갔다

빗금으로 다녀갔다

 

곳곳에 뿌리 채 뽑힌 나무의 빈자리가 보였다

이른 아침, 누군가 시린 발을 그 구덩이에 밀어 넣고

손등 비비며 한동안 서 있었다

 

마당엔 전기톱을 든 인부들이 웅성거렸고

담장 아래 나무토막이 수북했다

누군가 게워 놓은 시간의 속살들이

톱밥처럼 쏟아져 있었다

 

 

 

 

달둔*

 

 

은행나무 숲에서 꿈을 꾼다

천년의 숲이다

노란잎들 떨어져 쌓인 그늘 아래

수세기를 거슬러 온 사람들이 우수수

잠에서 깨어난다

 

그대, 맨드라미 수북한 붉은 담장을

성큼 돌아갔는가

골짜기를 돌아 나온 세찬 바람에 누룩빛 얼굴을

씻으며 갔는가

덤불 헤치고 흐르는 낮은 물길 따라

구불구불 울며 갔는가

 

창창한 나무 사이로 길이 숨는다

꿈꾸듯 흔드는 묵은 가지 사이로

가을빛이 꽂힌다

달뜨는 저녁 아니어도

먼 잠에서 떨어져 나온 단풍별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쏟아지는 소리에 잠을 깨는

속속들이 바람 머금은

달둔이 운다

 

 

*달둔 - 강원도 홍천 방태산 남쪽 오지로 살둔, 월둔과 함께 삼둔(三屯)으로 불린다.

 

 


**약력:2014년《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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