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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전주호/시집에 손을 베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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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전주호
시집에 손을 베다
급히
한 장 넘기려는 순간,
손가락을 베었다.
아차, 하는 사이
베인 살 속에서
빨간 꽃송이 뭉클 피어오른다.
누군가의 마음
곱씹지 않고
성급하게 넘기려한 탓이었으리.
삶 또한 그랬다.
성급하게 읽어 내려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음 베이고
상처가 덧나곤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순간,
현기증이 인다.
날선
내 마음의 페이지를 넘기려다
마음을 베이고
상처가 덧난 이들이 어디 한 둘이었으랴.
시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쓱― 베이고 나서야
내가 보인다
주변이 환하게 들여다보인다.
수선화가 피어있는 풍경
6개월을 갓 넘긴
아가
배밀이를 한다.
줄무늬요 위에서
연신 팔 다리를 흔들며
며칠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세상을 향한 첫 항해다.
삼등신,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
아가는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린 다음,
두 팔과 두 다리를 힘차게 내저으며
넘실거리는 줄무늬 파도를 넘고 또 넘는다.
엄마가 크게 벌린 팔 안으로
거센 파도를 넘어 아가가 다가온다.
내려다보며 엄마가 웃는다
아가가 웃는다
밥풀처럼 자라난 두 개의 이도 따라 웃는다.
깊은 곳에서부터
한 겹 한 겹 겹쳐진 마음들이
노란 수선화 꽃잎처럼
한꺼번에 활짝 피어나는 순간,
연두빛 봄물이 번져나간다.
온 세상,
봄내음 천지다.
**약력:1999년 《심상》으로 등단. 2002년 〈대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과 눈 맞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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