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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박성우/풀이 풀을 끌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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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81회 작성일 16-12-28 18:15

본문

신작시

박성우





풀이 풀을 끌고



풀숲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강가의 풀이 일제히 달려 나간다

풀숲을 헤치면서 풀이 달려 나간다

팔다리 어깨 흔들며 풀이 달려 나간다

사랑을 잃은 사내가

해 질 녘 강가를 달릴 때처럼

풀숲을 헤매다가 풀이 달려 나간다

풀숲을 헤집으며 풀이 달려 나간다

무릎이 깨지고 이마가 쓸려도

이 악물고 우격다짐으로 달려 나간다

비바람을 등지고 풀이 달려 나간다

빗물을 털어내며 풀이 달려 나간다

강가에 줄지어 선 버드나무를 흔들고

미루나무 허리를 휘청이며 풀이 달려 나간다

강줄기를 따라 풀이 풀을 끌고 달려 나간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바위를 뛰어넘고

풀을 뜯다 울어대는 염소를 뛰어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강마을 외딴집 대숲을 흔들며 풀이 달려 나간다

강물이 휘고 산자락이 흔들리게 풀이 달려 나간다

사랑을 잃은 사내처럼 귀 먹먹해지도록 울며

풀이 풀을 끌고 달려 나간다

 

 

 

배추흰나비



딸애와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철쭉나무에 나비가 앉아있었다

가만 보니, 거미줄에 걸린 나비였다 거미줄에는 다른 날벌레들도 잡

혀있고 해서 우리는 나비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나는 거미줄에 걸

린 나비를 조심조심 떼어 날려주었다 나비는 팔랑팔랑 날아가는가

싶더니 , 내 옆구리에 붙었다가 가슴께로 바꿔 앉았다 내게로 와서

앉은 배추흰나비를 다시 조심조심 떼어 날려 보냈더니 이번엔 왼팔

에 올라앉았다 나비야 잘 가고 잘 지내, 자꾸 내게로 오는 나비를 팔

흔들어 날려 보냈다 한데, 이번엔 팔랑팔랑 날아올랐다가 내려오는

가 싶더니 내 운동화 위에 앉았다 운동화 흰 끈을 붙잡고 매달리는

나비, 아 뭐지?

도서관에 다녀오던 딸애가 밖에서 급히 나를 불렀다 나가보니 나

비가 죽어 있었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살려주었던 곳이었다 딸애

는 이 주 전쯤 우리가 살려주었던 나비가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 배

추흰나비는 왜 우리가 살려주었던 곳으로 와서 날개를 접고 눈을 감

았을까 예사롭지 않은 나비였다 딸애와 나는 나비를 데리고 숲으로

갔다 우리는 아름드리 굴참나무 아래를 조금 파고 나비를 묻어주었

다 딸애는 망초꽃 한 가지를 나비 무덤에 놓아주고는 손 흔들었다

나비야 안녕 잘 가고 잘 지내 우리 또 만나자, 딸애 손을 잡고 굴참나

무 숲을 빠져나오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굴참나무 이파리에 붙어있

던 배추흰나비 떼 같은 볕이 팔랑팔랑 날아오르고 있었다

 





 

**약력:2000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거미, 가뜬 한 잠,자두나무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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