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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이영주/눈물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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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영주
눈물집
무덤에는 좋은 사람만 오는 거야. 중세 속담에 인간은 태어나자마
자 죽을 나이만큼 늙어 있다고 하는데. 삽날을 엎고 그가 털썩 주저
앉는다.
무덤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람이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
터 눈물에 친숙하게 되어 있어. 울지 않으면 죽잖아. 자신의 엉덩이
를 철썩 때리며 그가 담배를 문다.
이 무덤에는 물이 너무 많이 차서 좋은 사람도 썩겠는데. 죽었는
데도 왜 형태를 보존하는 일에 그렇게 힘을 쓰는지. 작업 일당을 더
쳐 주셔야 합니다. 그가 입 꼬리를 올리며 씩 웃는다.
그는 나의 가족. 좋은 사람이다. 무덤을 파헤치는 신성한 일은 기
록하지 않는다. 관 뚜껑을 열고 보니 눈물로 가득 찬 벌레들이 꼬물
거리고 있다.
야간버스
내가 좋아해, 기후의 상상력을.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가 딱딱
해지면서 종국에는 부서져버릴 피의 온도를. 우리는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잠이 들지 못한 채 서로의 창문을 들여다본다.
창 밖에서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기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야
간 버스는 이상하지. 만질 수 없는 것들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고.
만질 수 있는 것들에는 흥미가 없고. 숯덩이처럼 가라앉은, 만져볼
수 없어서 영원히 자유로울 너의 울음. 그것의 정령성을 믿지 못하
면 떠날 수밖에 없는 정령의 운명.
우리는 눈을 감는다. 각자의 행복했던 잠을 애써 떠올리며 손을
잡는다.
네 잠에는 들어갈 수가 없으니 내 온도를 줄게. 뜨거운 악몽 속으
로 떨어지는 너에게 내 차가운 피를 줄게. 울음이 불타오를 때 네 밖
에서 나는 창문을 두드린다. 우리, 서로를 믿으면서 가지 말고 좋아
하면서 가야 해.
정령은 숲에서 떠나와 예언을 잃었으니 우리는 각자의 울음에 연
루될 수가 없네. 너만의 공포, 나만의 희망, 만질 수가 없으니 우리
는 서로를 더듬는다. 차갑고도 뜨거운 온도가 흐를 테지. 우리가 융
합될 수 있다면 이 밤을 건너서…… 너는 공포 때문에 잠에서 깨지
못하고 나는 희망 때문에 눈을 부릅뜨지.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다
가 딱딱해지며 부서져버릴…….
**약력: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차가운 사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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