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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김해경/엔젤트럼펫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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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해경
엔젤트럼펫
브루그만시아*가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질없는 사랑
이제는 그만이라고
어제는 없던 꽃잎
팝콘처럼 부풀리면
달아났던 사랑이 돌아오기라도 하느냐고
울대가 터질 듯
뿌앙~ 뿌앙
나팔을 불어대지만
눈멀고 귀 먼 사랑
달아난 지 오래
사랑은 그렇게 큰 나팔로 불어댈 일 아니라고
가만가만
아주 작은 음으로
들릴 듯 말듯 해야
몸과 몸이 블루스, 블루스
영혼과 영혼이 스치듯 미끌어지고
대목장으로 시끌한 재래시장 한켠
키 큰 엔젤트럼펫이 콜라텍 입구를 장식하고
세상과 관계 없는 사람들이 천사를 만나러 간다
눈치 빠른 악사들은 그들을 숨기려
녹슨 나팔을 불어대는데
고개 숙인 사람들이
트럼펫 주둥이로 빨려 들어가는 황혼녘이다
* 엔젤트럼펫 중 꽃이 땅을 향해 피는 종.
달고나
더럽게 춥고 칙칙한 기억만 남아 있는
양지 바른 골목 끝 달고나 아저씨
연탄 화덕 쪽자에 설탕이 녹아간다
젓가락으로 꼭 찍은 소다가루 휘리릭
적당하게 부풀은 달고나 철판 위에 엎어지고
별 아님 기역이나 리을
달콤함을 맛보려 요동치는 혓바닥과
또 한 판의 달고나를 뽑아내려
침을 바르고
눈을 부릅뜬 채 바늘로 찍어대는 일들이
야바위처럼 오고
내가 달고나를 혀끝에서 녹일 때
가난한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속빈 내가 또 한 번 달고나를 찍었을 때
어머니의 지갑에서 50원이 사라졌다
50원에서 백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
달고나를 콕.콕 찌르던 바늘끝이
어느새 내 눈을 찌르고
미각마저 빼앗겨버린 혀는
인생의 쓴맛만 기억해도
달고나가 익어가고 있다
인생은 허방이다
미리 눌러놓은 길이 있어도
적당한 무게감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 방에 와그작 무너져 내린다
삶은 또 다른 달고나를 위해 야바위를 해야 하고
**약력:2004년 계간 《시의 나라》로 등단. 시집 『메리네 연탄가게』 외. 문화공간 「수이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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