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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박신규/염주 한 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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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191회 작성일 16-12-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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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신규




염주 한 알

등반가 안치영에게



추운 길가에 맹인 노파가 졸고 있다

순한 산바람에도 기우는 몸피,

백년의 바람결이 씌어 있는 얼굴 주름과

염주에 쌓인 손때가 로체의 밤하늘처럼 빛났다

내 마음속 신이 당신의 신께 경의를 표합니다

합장하니 하얗게 퇴화한 눈동자로 웃는다

더듬더듬 염주 한 알을 빼어 쥐여주면서

손목시계와 바꾸자고 한다

기압과 고도를 읽어주는 시계는

히말라야 대양에서 등대불빛 같은 것

염주를 다 준다고 해도 아니될 말씀인데

고작 한 알에 미아 신세가 되라니

소리내 웃으면서 염주알을 돌려주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가장 먼저 퇴화하는 건 시력,

그다음으로 손발의 감각이 멈춘다

로체 남벽 8,200m쯤에선 숨도 멎어

거벽巨壁에 박힌 하켄보다 더 외롭다고 느꼈는데

캄캄한 시야를 뚫고 염주알 하나가 반짝이며 내리꽂힌다

하산하라는 명령 


딱딱하게 얼어붙은 손으로 낙석의 흔적을 더듬어보니

백년은 묵었을 단단한 뜨거움이 상처를 밝힌다

하행카라반에 다시 찾은 그 길가엔

생전 처음 보는 검은 야생화 한 송이,

이후 숱한 등반길에도 보지 못한 칠흑 같은 꽃,

신이 졸다 가신 흔적

 

정상을 친다는 것, 정복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미친 말, 지옥 같은 말

도전하거나 오르는 것도 산은 아니다

풀꽃같이 작은 신 앞에 더 낮게 엎드리듯

생의 끝에서 감각 없이 떨리는 손을 내밀듯

그렇게 모시는 것이 산이다

온몸 떨리는 첫 사랑 고백처럼

내 마음의 산 또한 당신의 산을 모시는 것이다





,

취한 말들을 개서 그리는 자화상



어디까지가 어깨이고

어디부터가 팔인가

허수아비 그늘이 소란하다

촌스럽다고 떠들면서도 모여드는 작설들

바람 불면 나부끼는 소매로

하늘을 가리기도 하는 참새들

세차게 몰아치는 벌판에 나설 땐

허수아비 기치를 올려야 하네

허허실실 허허 진격이네

바람 잦아 심심하면 안대를 씌워 애꾸를 만들기도 하네

어디까지가 모가지고

어디부터가 몸통인가

치자니 애매할 것 같네


어깨 넓은 사람들이 좋았네

그 어깨 뒤에서 깊은 숨을 쉬고 싶었으나

넓고 좁은 것들 모두 다

이 가늘고 빈 어깨 뒤로 숨었네

바람에 맞서는 허허벌판의 허, ,

폭풍이 지나간 폭풍처럼 다 떠나간 자리

홀로 남겨진 허, 하나

목소리 떨어진 피켓의 뼈대 같은

발가벗겨진 십자가 같은

어디까지가 벌 받는 어깨이고

어디부터가 피 흘리는 손인가

애매해서 부러지진 않았네

 




**약력:2008년 문화예술위창작기금을 받고 문학동네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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