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0호/신작시/김송포/초록의 빈 병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김송포
초록의 빈 병
바닥에 쓰러져 있다 바퀴 아래로 구른다. 기울어진 듯 누워 있고
누워있는 듯 갈지자의 몸이 기울어 있다 공을 대접해야 하는 의무로
지갑이 털리고 이빨이 부러지고 양복은 찢어지고 마흔일곱의 나이
는 굽어지고 있다
퍽 하고 저항 없이 쓰러져 간 남자의 그림자 새까맣다 채워져 있어
야 하고 부어야 하는 드라마에 병의 숫자는 길기만 하다
기억은 없다. 몸이 비틀거렸을 뿐이다. 손이 나도 모르게 엉덩이
에 간 것이다. 서로 허용하는 범위의 장난이다 안경 너머로 비친 병
이 시야를 가로막았을 뿐이다
초록의 청춘이 변했을 것이다 타이를 풀어헤쳐 살아남아야 할 제
도 속에 단단히 묶어야 할 넥타이가 너와 나의 관계를 물들게 한 것
이다
물방울 여자
강렬하게 밀고 오는 폭포를 탐하기로 한다
가진 것도 줄 것도 없는 여자
돈이 없어 달려갈 궁리를 못 하다가
덥석 가방에 세면도구를 싣고 가 보았지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여자가
플리트비체 폭포에 넋을 잃고 우산을 쓰더군
대륙에서 기이한 이상향을 발견했다고 좋아했지
시원하게 뿜는 폭포가 절벽에서 낭떠러지로
거름망 없이 쏟아지자
여자는 더 움츠렸어
내가 언제 너에게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뛰어 갔었니
머뭇거리다가 그저 떨어지는 빗물 받아먹었지
폭포수처럼 달려드는 너의 질주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
처음 생경한 고백을 듣는 순간,
뿌리가 흔들렸어
모른 척 단순했지만 너는 자연 물소리의 일부라는 걸 비쳤지
언제 그랬냐는 듯 합쳐지다 빠져나간
너는 플리트비체, 같은 물줄기,
너는 길고 웅장하나
나는 작고 부서지는 걸 두려워하는 물방울
**약력:201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집게』. 포항 문학상.
- 이전글60호/신작시/이향숙/능소화가 목을 부러뜨리는 것은 외 1편 16.12.28
- 다음글60호/신작시/김나원/거품이다 외 1편 16.12.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