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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작시/황유원/가을 축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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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유원
가을 축제
여기서도 들려오고
저기서도 들려온다
어느 날 열람실에 숨어든 한 마리 귀뚜라미
쉼 없이 울어대고 귀뚜라미 발자국이 논문 대신 내
노트에 찍혔다 희미해지는 가을
누가 떠드는 거라면 가서 좀 조용히 하라고
말이라도 해볼 텐데 어디서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귀뚜라미에게
가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여서
하는 수 없이 듣는다 두 귀에 선명히 찍혀오는 소리
인간아
너 같은 게 공부는 해서 뭣하니
갇힌 귀뚜라미 한 마리
백지 위에 크게 가을이라고 쓰고
고요 속에 줄이라도 그어대듯
울어댄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밖에 있는 것 같고
책상 전체가 가을의 풀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만 같아서
나 혼자만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거기
앉아 있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그냥 앉아 있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바깥에선 더 많은 귀뚜라미들이 울어댄다
다음 날 네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면
우린 귀뚜라미 소리 따윈 까맣게 잊고
다시 학업에 열중하게 될 테지
논문을 완성하고
보란 듯이 졸업모를 쓰고
교정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남길 테지
누구는 아마 교수도 될 거야
그러나 정년 후에도 이따금씩
멈추지 않고 들려올 소리
귀뚜라미 소리로 인해 우린 들판에도 있었다가
다시 열람실에도 있게 된다
여기서도 들려오고
저기서도 들려오는
달빛의 테두리 같고
A4 용지의 백색 같은
부러진 다리 하나의 고요함
물에 떨어뜨린 한 방울
침향의 맑음 같은
유리창에 묻은 차가운 얼룩
잠시 귀뚜라미 소리 적혔다
사라진다
주점이 끝난 새벽의 교정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버스 정거장에서
밀려오는 짜증
바닷가에 가서 보고 있다
밀려오는 짜증을
밀려오는 짜증은 여기서도 볼 수 있지만
굳이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해변에 앉아 보고 있는 건
혹시 거기에는 그게 없을까 했더니만
역시나 그게 있어 이렇게 보고 있다
밀려오는 짜증을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의 몸매와 함께 보고
금속 탐지기로 동전을 줍는 바보들과 함께 보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비치 발리볼과 함께 보고 있다
함께 넘실거리며
밀려오는 짜증에 빠져 있다
우린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잠시 즐거웠지
해가 지면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술집 2층으로 올라가
조개구이를 먹으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밀려오는 짜증을 감상한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새롭게 밀려오는 짜증을 선사했고
그것은 취기와 더불어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온다 막차 시간과 함께
불꽃놀이는 즐거웠나
불꽃놀이는 짜증처럼 폭발했나
밀려오는 짜증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건 작년 여름 인천에서의 일이었고
밀려오는 짜증
신작시바닷가에 가서 보고 있다
밀려오는 짜증을
밀려오는 짜증은 여기서도 볼 수 있지만
굳이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해변에 앉아 보고 있는 건
혹시 거기에는 그게 없을까 했더니만
역시나 그게 있어 이렇게 보고 있다
밀려오는 짜증을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의 몸매와 함께 보고
금속 탐지기로 동전을 줍는 바보들과 함께 보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비치 발리볼과 함께 보고 있다
함께 넘실거리며
밀려오는 짜증에 빠져 있다
우린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잠시 즐거웠지
해가 지면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술집 2층으로 올라가
조개구이를 먹으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밀려오는 짜증을 감상한다
메뉴판에 적힌 가격은 새롭게 밀려오는 짜증을 선사했고
그것은 취기와 더불어 밀려갔다가 다시
밀려온다 막차 시간과 함께
불꽃놀이는 즐거웠나
불꽃놀이는 짜증처럼 폭발했나
밀려오는 짜증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건 작년 여름 인천에서의 일이었고
밀려오는 짜증
나는 밀려오는 짜증을 느끼며
올해의 방에 홀로 머물며
밀려가는 파도 소릴 듣고 있다
바람과 바다가 있는 한
파도는 끝도 없다는 사실을 복기하며
**약력:2013년 《문학동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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