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0호/신작시/장옥근/반짇고리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장옥근
반짇고리
떠나간 영혼들처럼 함박눈 쌓이는 밤이면
호롱불에 어른거리던 어머니의 바늘땀이 보인다
썩은 모과처럼 아홉골 모퉁이 몬당에 묻힌 어머니가
한 송이 눈발로 날아드는 것은
야야 나이 들어갈수록 살아온 날들이 또렷해지더라
어머니 깊은 숨이 내 몸으로 한올한올 풀어져 내리는 것
옷 한 벌 받아 입을 언니도 물려줄 동생도 없던 나는, 늘
한 뼘이 크거나 작아진 옷을
소매 끝이 반들거리고 무릎이 터지도록 입어야 했지만
작은 바람구멍이라도 생길까
어머니 밤늦도록 바느질을 멈추지 않았는데
낙숫물 떨어진 자리처럼 촘촘한
어머니 바늘땀이 꿰매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이 먹을수록 뚫리는 성긴 구멍, 오늘은
겹겹이 쌓이는 눈처럼 고향집 마루에 앉아
가는 바늘귀에 어머니의 실을 꿰어본다
골목 끝에서
길 잃은 바람처럼
집을 나선다
영하 13도
눈물도 얼음이다
집 없는 발은 시리기만 하고
신혼 때부터 살았던 이 골목 저 골목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돌아 나온 그의 발걸음이 점점 작아진다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고
몸 그늘을 숨길 수 있는 집
네 식구 삼시세끼 밥을 먹을 수 있는 집
수유3동 골목 깊숙이 들어오지 못한
겨울해는 오늘도 그냥 지나가고
우렁이 몸속 같은 그의 얼굴에 저녁이 내린다
집이 없다는 것은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울먹이던 아들의 얼굴에도 어둠이 스며든다
부흥부동산 곰보아저씨네 텔레비전 화면에
설 연휴 여행객으로 붐비는 공항이 떠있는데
하필이면 그때
힘을 빼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물 위로 둥 떠오른다고
물에 몸을 맡기라고 소리 지르던
젊은 수영강사 얼굴이 오버랩 된다
세든지 2년도 채 안 된
우리 집이 팔렸단다
**약력:2013년 《시와경계》로 등단.
- 이전글60호/신인상/김희정/목요일 외 4편/소감/심사평 16.12.28
- 다음글60호/신작시/황유원/가을 축제 외 1편 16.12.2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