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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인상/김희정/목요일 외 4편/소감/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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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64회 작성일 16-12-2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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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김희정





목요일



하현달이 목요일에 닻을 내린다

10, 포장마차에서

여자는 철 지난 봄날을 찬물에 말아먹는다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작은 섬 같은

여자의 간판 없는 포장마차

천막에 휘갈긴 이름 몇 개로

여자는 불려진다

손님들은 철새처럼 여독을 풀자마자

취기의 길을 떠나고

여자는 표류하는 제 남편을 찾지 않는다

목요일 청취자 코너에 여러 번 제 사연을 흘려보내지만

일인분에 2천원 어치의 얘깃거리는

누구도 건져 올리지 않아

여자는 제 얘기를 듣고 슬퍼해 본 적이 없다

끼룩, 끼루룩 어린 딸이 웃는다

너도 언젠간 이곳을 떠나겠구나

기름때 묻은 손에선

튀김집게도 잔돈도 인연도 자꾸 미끄러진다

손님들의 웃음소리는 높게 파랑을 치고

여자의 목요일은 홀로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굴뚝


 

저는 어머니의 굴뚝이에요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일 없듯

제가 태어난 거라죠

성냥팔이 소녀가 왜 자신이 가진 모든 성냥을

그었는지 모를 나이에 어머니는,

 

부싯돌에 돌 튀기는 소리가 들려도

눈앞이 깜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루는 벽돌처럼 쌓기 쉬워서

우리집 굴뚝은 마을에서 가장 높아요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이에요

 

굴뚝 오르는 것들은 모두 검고 가벼워지기 때문에

밤하늘은 무서워요

부나방처럼 달라붙은 팔자며 악몽이며

순식간에 불타오르기도 하는 걸요

그때마다 어머니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저만 느끼길 바라요

 

어머니, 겨울은 왜 추운 거예요

춥기 때문에 내가 널 낳은거다

희나리도 때가 되면

머리맡 한 번 덮힐 수 있지 않겠니

이젠 제 웃음에도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는걸요


때론 우두커니 있는 것이

오래 불씨 품을 수 있을 테니

어서 자라, 뼈마디가 잘 접히지 않는구나


그날 밤, 굴뚝에선 남도행 밤기차 기적소리가 들렸어요





홍시


 

나 태어날 때

어머니는 홍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셨다 했다

 

홍시를 매다는 힘은 무엇일까

나가 니한테 매달리는 것만 하긋냐, 라며

어머니 구멍난 양말짝을 기우신다

감꽃 떨어지는 여름은 이미 지나갔는데

어머니 꽃놀이 나가신다 하신다

 

감농장을 하시는 할머니

이젠 눈 감아도 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며

올해 추석엔 자식 한 명 안 올거라 했다

할머니 말대로 그 해는 흉작이었다

 

저것들이 감나무 상처일지도 모르것다

이젠 다 아팠다는 듯

곧 가벼워질 수 있을 거라는 듯

감나무 아래 붉은 웅덩이 고인다

나무도 우리집 여자들처럼

봄을 기다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땅에 봄 닿지 않는 곳은 없으므로

언제부턴가 나는 까치밥이 무서웠다

홀로 오래 몸 떨었지만 홍시처럼

우리집은 여물지 않는 가을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



하늘에 까만 도배지 한 장 붙어져 있다

손톱자국처럼 벗겨진 귀퉁이에

마감이 벗겨진 하현달이 걸려 있다

빈집, 풀 먹인 한숨을 벽에 붙이며

나이 드니 눈앞이 모두 막다른 벽이구나,

아버지는 채 마르지 않은 벽지에

꽃잎 한 장 틔우지 못한 봄을 덧댄다

그림자가 아버지에게 춘곤증처럼 달라붙어

아버지는 고개를 자꾸 끄덕거린다

한꺼풀 벗겨내면 누구든 똑같다,

물때 번진 종이재단을 벗겨낸 뒤

무기력을 롤러로 발라내는 도배공 아버지

넋두리가 본드칠 된 이음매마다

찔레꽃 아카시아꽃 난분분한 꽃무늬들이 피어 있다

초배지 아래 얼마나 단단히 뿌리내렸는지

단폭을 타고 곧게 서 있다

나도 한 송이의 문양이 되어 꽃 피어봤으면,

규격 재지 못한 어둠이

종이 쪼가리처럼 구석에 널브러져 있다

밀대로 좍 펴지 못한 밤하늘

별빛들이 구겨져 빛 바래고 있다




두부공장 사람들


 

하늘엔 구름이 두껍게 엉겨 있고

프레스가 찍어낸 달빛이

사내들의 두부頭部를 비춘다

이곳에선 잔고장 많은 공장장의 명령도

고향으로 반품된 동료들의 넋두리도

네모 반듯한 틀에 맞춰진다

컨베이어 벨트에 줄맞춰

나사를 조이고 버튼을 누르면

포장 돼 트레일러에 쌓이는 피로

이곳엔 불량품이 없다

 

그림자도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눈 밟은 발자국처럼 모양이 비슷한

무기력의 꼬투리가 터진다

넋두리 내뿜던 굴뚝이 폭설에 몸 숨기고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지느라

천 원짜리 두부만도 못한

사내들이 자꾸 삐그덕거린다

콩멍석 깔아놓은 듯

툭툭 터지는 거리의 신음들

12월의 겨울이 헐값에 팔린다




<소감>


항상 아무도 모르게 이별했습니다. 저만 아는 장면들이 자꾸 스쳐

지나갔습니다. 돌아볼 용기는 없었지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습니

. 그 곳마다 닻을 내렸습니다. 배를 띄우고 닻을 내리는 것을 반복

했습니다. 몇 글자 적어 부표로 띄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다는

어둡고 넓었습니다. 열 길 물속에 한 길 사람 속까지 얽혔습니다.

리저리 휩쓸리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등대가 세워졌습니

. 이제 항구로 돌아가는 뱃고동 소리를 울릴 수 있게 됐습니다.

많은 목소리와 그 날의 버드나무와 상서로운 문장에게 감사합니

. 표류하는 저에게 가지를 물고 온 비둘기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을 있게 해준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에 감사합니다.

저에게 시를 전해준 최두석 선생님과 최금진 선생님께 감사드립

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통해 신인상이라는 우듬지를 전해준 리토

피아에게 감사합니다. 뿌리 내릴 땅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림자 짙

은 문장으로 답하겠습니다. 마파람이 붑니다. 이날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김희정마로니에 여성백일장과 리토피아에 감사





<심사평>


탄탄한 표현력이 돋보여

 

시작詩作의 단계는 계기(모티브)의 발견에서 시작해 이를 형상화하

는 언어적 능력, 그리고 마지막에는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는 시적

인식의 탁월성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시인상 수상자 중에서 김희정

시인은 우선적으로 탄탄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하현달이 목요일에

닻을 내린다/10, 포장마차에서/여자는 철 지난 봄날을 찬물에 말

아먹는다/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작은 섬 같은/여자의 간판 없는

포장마차/천막에 휘갈긴 이름 몇 개로/ 여자는 불려진다” (

 

목요일)

는 시적 진술은 서사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현대적 일상의 삭막함을

표현하는 묘사로서도 성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하나 찾아보면

홍시를 매다는 힘은 무엇일까/나가 니한테 매달리는 것만 하긋냐,

라며/어머니 구멍난 양말짝을 기우신다” ( )와 같은 구절은 시인

 

홍시

 

의 시적 인식이 탄탄한 토대에 기반 했음을 반증하는 뛰어난 부분이.

 

김희정 시인의 미래를 위해 굳이 첨언하자면, 시의 출발점이

 

과 같은 익숙한 소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니체의

 

비상 飛上하려는 자는 먼저 추락 墜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존

 

재론적으로 깊이 사색할 필요가 있다. 작품 두부공장 사람들이나

굴뚝처럼 객관적 거리가 필요한 작품들에서 시가 관념적으로 흐

 

르는 경향은 다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어쨌든 김희정 시인이 탄탄한 표현력을 토대로 시인의 시 세계를

 

구축,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믿는

    

./백인덕, 장종권

 

 


<33회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장원 수상작 심사평>

전반적으로 글제가 어려웠던 것 같다. 쉬운 글제로의 쏠림 현상이 심했다.

게다가 글제를 시적으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시들이 많아서 아쉬웠다.

상적인 언어의 산문적 전개, 맥락에 맞지 않는 생경한 표현 등은 극복할 과제

로 여겨진다. 이에 비해 입상한 작품들은 소소한 일상의 풍경에서 시적인 순간

들을 건져 올리는 순발력이 돋보였으며, 비유를 만드는 솜씨에 있어서도 여타

의 참가자들과 구분되는 면이 있었다./박라연, 복효근, 차주일, 강 정, 장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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