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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신인상/권지영/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외 4편/소감/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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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318회 작성일 16-12-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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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권지영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붉은 노을이 퍼지기 시작하면 등대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오지.

정사정없이 돌아가는 하루의 고단함을 씻기 위해 시계를 멈출 필요

는 없어.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 속에서 냉정해지고 안개 낀 바다에

1분도 안 되는 찰나로 신호는 작동하지. 수 백 년 전부터 흘러 들어

온 모래알갱이들이 서로 응집되어 해안의 조개껍데기와 유리파편

을 숨바꼭질시키고 갯바위 낚시꾼이 서성일 바위섬을 파도가 찰싹

이며 해령에서 신발 한 짝을 건져 올리네. 기다릴 줄 아는 어부만이

만선의 기쁨을 안고 오는 동안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망둥어가 얕

은 바다에서 슬픈 헤엄을 치고 있어. 일상의 새로움을 찾아 나선 여

행자의 눈에 띄지 않게 투명한 물 위로 뛰지 말고 모래바닥으로 기

어야 할 때야. 붉게 물든 하늘이니 풍랑은 오지 않을 것이나 너울거

리는 바닷바람에 마음을 놓을 만큼 붉은 하늘에 재즈가 울려 퍼지고

있어.





귓속말


 

귓속이 간지럽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의 햇살이

방안으로 소리 없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거리낌 없이 바스락거리는 귀 속으로 들어간다

귓속 세상이 한바탕 소란하다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귓가에 머물다가

가루가 되어 앉아있고

이리저리 피하는 누군가도 묻어있다

조금만 더, 가녀린 욕망의 딱지가 안쪽 벽에 붙어서

조심스러운 손이 출입금지 푯말 앞에 멈춘다

 

제대로 듣지 못한 너의 마음을 긁는다

물음표로 끝난 말 뒤의 답답한 궁금증

귓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윙윙거리는 이명이 된다

 

멈추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움직이고 있는 귀이개는

음식을 다 먹고 핥고 있는 숟가락처럼

귓속에서 소화되지 못한 이물질을 퍼내고

맑은 공기로 채우기 위해 분주하다

 

수많은 말들이 기억 저장소로 옮겨지기 전에





그믐달의 공존



그믐달 옅은 자리로 들어가는 시간을 보았나

구름 걷힌 자리 허공 속에 무리지어 달리던 그늘

너의 침묵이 이루어낸 문장들이 밤하늘을 오른다

꼬박거리며 졸던 고개가 번쩍 치켜진 아득한 순간

늪에 빠진 몸은 일시 정지되고

나의 머리가 우주로 떠오른 아주 잠깐

잠자는 지갑 안에서 딸랑거리는 동전들의 외침

너를 깨울까 말까

망설임과 설레임의 사이를 종종거리다

그믐달 아래를 지나간다

나이가 찰수록 진실한 고민이 깊어지고

사그라들던 아주 작은 달의 형체

비켜 서 있다가 새로운 시간 앞에 소멸되어지는 청춘

쉬 잊어버리다가 내 속에 꼭꼭 가둬버린

막바지에 이른 달처럼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공존의 달 속으로 올라가는 밤





고등어 마을


 

실핏줄처럼 줄지어 앉아있는 지붕들

한 뼘도 안 될 만큼 가까운 이웃들이 모여 사는

바다 위에 마을이 있다

앞집에 시야를 가리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아예 언덕 꼭대기에 지은 집

 

이른 새벽 부두로 출근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의 삶 중심으로 가는 길이다

곤한 잠을 자는 아기를 등에 업고

고등어구이 한 점 뜨신 밥 위로 얹어

차가운 바닷바람 앞에서 하루를 여는 어시장

 

밤새 그물을 깁던 어선들이 아침 해를 끌고

부두로 들어오면 손 빠른 빨간 장갑들의

분주한 선별작업이 이어지고

비린내 나는 땀 냄새의 스웨터에서

아기가 배시시 졸린 눈을 뜬다

 

매일 반복된 고단함을 고등어조림 밥상에 둘러앉아

시린 손등에 수저 나누며 함께하는 어시장 사람들

 

구불구불 좁은 길이 이어진 골목 따라 걸으면

바닷바람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고등어가

언덕 위 높은 집에서 사람 사는 냄새로 진동을 하며

살을 쪼이고 있다






물수리



공허를 적시는 검은 갈색 깃털이

차가운 겨울 하늘을 유유히 비행한다

물속을 응시하는 정지된 눈동자


하늘의 일부였다가 찢어지며 내리치는 벼락


곤두박질하는 발톱에는 사냥감이 휘어있다

저공의 날갯짓이 찬 공기를 훑는다

나그네를 위한 검은 바위로 내려앉은 포식자의 눈


누군가 순식간 꿰뚫고 간 물 속은

어느새 평화로운 나라로

바위에선 보이지 않는 잃어버린 가족의 나라로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눈도 감기지 않는 눈동자의 나라로


고인 물이 가득한 세상 위를

고요히 비상하는 물수리 한 마리




<소감>


   가을이 소리없이 다가와 지척을 물들이고 가면서 시어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부슬거리듯 나부끼던 낙엽이 노래가 되고 마음을 동하게 하였으니 건조한 가슴에 바스락거리는 시들로 눈을 떠봅니. 아이들과 책과 함께하는 익숙한 일상에서 새로운 시선들로 매듭 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진한 시편들에 온기를 불어넣어주신 리토피아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곧 다가올 겨울을 든든히 지켜낼 수 있으리란 마음에 설레임과 부족한 시심을 더 풍성히 채워가리라는 다짐도 해봅니다.오랜 시간 시로 엮어온 인연들과 어려움 속에서도 늘 함께해준 가족들께 진심으로 깊은 고마움 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권지영





<심사평>


   현대성을 해석하려는 개성적 시각의 가능성


   주지의 사실이지만, 오늘 우리가 생산하는 시는 당연히 현대시에 속하게 되고, 현대시현대성 modernity’을 시적 인식의 근간 으로 규정한다 . 여러 개념들이 미세한 편차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념적 요체는 부정의 정신과 단절의 의지로 축약할 수 있다. 권지영 시인은 붉은 노을이 퍼지기 시작하면 등대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오지. 인정사정없이 돌아가는 하루의 고단함을 씻기 위해 시계를 멈출 필요는 없어.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 속에서 냉정해지고 안개 낀 바다에 1분도 안 되는 찰나로 신호는 작동하지”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에서처럼 우리 삶의 근본 원리를 담아내려는 의지를 높이 살 수 있다. 고등어 마을그믐달의 공존도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서 일정 수준 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권지영 시인의 미래를 위해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물수리에서 고인 물이 가득한 세상 위를/고요히 비상하는 물수리 한 마리처럼 시적 명제가 동어반복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에즈라 파운드나 프란시스 퐁쥬처럼 극단적 이미지즘을 표방하지 않는다면, 시적 명제는 묘사가 아니라 발전적 진술에 의해서 의미를 생성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극대화 해 탁월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묘사진술의 차이에 대한 인식

을 다시 한 번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시인은 이제 출발선에서 막 발 걸음을 뗀 것이므로 시간과 정신의 여유를 갖고 탐구하는 자세를 보이면 될 것이다./백인덕,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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