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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책 크리틱/최서진/입춘立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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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715회 작성일 16-12-29 17:00

본문

책 크리틱

최서진




입춘立春의 미학 허형만 시집 가벼운 빗방울





1. 종심從心의 미

   이 시집은 자유의 시집이다. 이 시집의 시적 주체는 갖가지 그림자와 불길한 꿈에서 달아나 광활한 시간과 넓고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비로소 스스로를 구한 것이자 커다란 자유를 얻은 것이다. 폴 비릴리오는 인간의 숙명은 죽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멸에 있다고 말한다.

비릴리오에게 소멸은 이곳에서 사라져 다른 곳으로 가는 움직임/운동이다. 삶의 양식도 소멸과 생성을 되풀이 한다. 시인은 지금 서있는 곳이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삶을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생명-우주라고 하는 깊고도 넓은 세계의 새벽에 시인은 고요한 가슴으로 쓴다. ‘나의 스승은 말씀하신다. 모든 생명 앞에 겸손했느냐. 더 겸손하여라. 종심의 나이에 열다섯 번째 시집을 내며 무릎 꿇고 듣는다.’는 시인의 말을 읽는다.가벼운 빗방울은 안식의 푸른 시간에 닿아 있다. 내면에 가 자리잡듯이 고요한 빗소리가 눈물처럼 젖어 우리를 편하게 하는 시편과 만난다. 저녁놀이 물드는 마당을 지나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참 멀리 왔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나보다 더 멀리서 온 현자賢者도 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모르겠다고

나 이제 말하지 않으리

어떤 이는 말을 타고 가고

어떤 이는 낙타를 타고 가나

그 어느 것도 내 길이 아니라서

하나도 부럽지 않았던 것을

이제 와 새삼 후회한들 아무 소용 없느니

왔던 길 지워져 보이지 않고

가야 할 길 가뭇하여 아슴하나

내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이여

나 이제 말할 수 있으리

그동안 지나왔던 수많은 길섶

해와 달, 낡은 발끝에 치일 때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노라고



                                                                      ―「종심 從心*의 나이전문



* 공자가 70세에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

고희’ ‘칠순 ’‘희연등과 함께 70세를 이름.



   제목이 암시하듯 종심 從心의 나이는 삶이라는 심연의 계단을 오래 올라 온 자의 분별력이 근간을 이룬다. ‘내 나이 일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중심부를 향하여 모든 행간은 수렴된다. 한 시인이 추구해온 진지한 성찰이 시인의 마음을 통해 새로운 눈이 열리는 순간과 만나게 된다. 간은 욕망을 달래기 위해 많은 번민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삶의 지혜라는 보석을 얻을 수 있다. 허형만의 라는 거울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봐야 하는 시간이다. 길 위에서 이나 낙타를 타고 가는 타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길이 아니어서 참으로 많이 아팠다는 시인의 고백을 듣는다. 자신의 얼굴 하나를 갖기 위해 수없이 많은 죽음과 탄생을 반복해야 하는 것. 시는 자신의 삶과 내면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운명 지워진 세월의 슬픔을 이야기 하다가 칠십에 이르러서야 그 운명을 받아들인 자의 마음을 발설한다. 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후회한들 소용없다는 인식이 사랑의 방향으로 풀리며, 기름지고 광활한 대지에 이

른다. ‘길섶마다 내 몸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종심의 나이에 이르렀다. 체험적 삶의 화법이 깊이 있게 시를 통해 전개된다. 을 사랑하는 능력을 지속하고, 다시 자신의 속도에 맞게 생명을 사랑하는 일에 관한 노래를 시작한다. 아픈 상상력과 발상의 전환이라는 문을 통해 인간과 삶의 근원적인 중심을 꿰뚫으며, 아름다운 현재를 우리 앞에 열어 놓고 있다. 사물과 의식의 끊임없는 교섭과정을 통해 자기인식에 이르렀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인식은 타자에 대한 고통을 이해하고, 사랑을 확장해 나가는 문법이다. 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고래는 오늘도 양양한 바다를 헤엄치며 꿈꾼다


달빛에도 젖지 않는 매끄러운 몸으로 그대에게 다가가


길 꿈꾼다


어머니 숨차요 꿈속은 너무 숨차요


고래는 푸르른 하늘이 그리워 치솟는다

하늘의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기 위해 치솟는다

바다를 한 번 들었다 놓는 순간 허공을 활처럼 잡아당겨

남천南天 고래자리 별들의 안부가 궁금해 치솟는다


어머니 태아가 꿈틀거려요 젖꼭지가 간지러워요


바다 속은 꽃밭이다

새 생명이 뛰어 노니는 우주다

그대를 향해 내뿜는 평화의 숨소리

분수처럼 뿜어내는 저 찬란한 무지개를 보라


고래는 오늘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길 꿈꾼다

사람을 돕고 사람이 도우며 함께 환호하고 함께 춤추길

꿈꾼다



                                                              ―「고래의 꿈전문



   시는 언제나 삶의 문맥에 닿아 있는 것이고, 시의 바탕도 삶과 동일성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의 맥락으로고래의 꿈을 보. 고래는 꿈속에서 혹은 꿈밖에서 무엇을 상상했을까? 고래는 꿈을 꾸는 존재이다. ‘고래는 오늘도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길 꿈꾸는 포유류. 그것도 돕고 함께 춤추며 살아가길 꿈꾼다. 고래는 사람을 사랑하며 함께 춤추기 위해 세상에 온 존재이다. 더불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래는 푸른 하늘별들의 안부가 늘 궁금하다.

   그래서 자주 바다 밖으로 치솟는 운동성을 지녔다. 고래의 운명은 일상에서의 시적 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운동들이 힘이 겨운 듯 자주 어머니를 소리 내어 부른다. 물 밖으로 절규처럼 치솟는 운동은 자신이 살아 있음과 동시에 삶의 비애를 자각하는 행위의 연속이다. 이 끝없는 고래의 행위는 열망을 실현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꿈을 이루지 못했음에 대한 회한을 깊이 새기고 있을 뿐이다. 고래는 오늘도 사람을 사랑하고 돕고 사는 존재의 꿈을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고래가 날아오르고 있는 중이다.




2. 공양의 미

   허형만의 시세계 속에는 무수한 생명의 장관이 펼쳐진다. 생명을 마주하고 깊이 천착된 생각이 구름처럼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 그는 아름다운 자연을 벽으로 삼아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꽃피우지 않은 풀은

한 분도 안 계시니

이 모든 풀꽃의 이름으로 등을 켭니다

     

 

이른 새벽

풀꽃의 품안에 잠이 든 별과 이슬을

기름으로 등을 켭니다

 

 

풀꽃을 어루만지는 바람,

풀꽃에 입 맞추는 햇살을 구걸하여

등을 켭니다

 


이 대지에 향기를 품지 않은 풀꽃은

한 분도 안 계시니

이 모든 향기를 정성껏 모아 등을 켭니다



용서하소서

가난한 제가 드릴 거라곤 오직 이것뿐입니다



                                                         ―「공양전문




   「공양은 우주에 온 몸으로 드리는 기도의 자세이다. 이것은 시인 자신이 꿈꾸고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모습으로 세계와 대면하며 예외 없이 존재한다. ‘이 대지에 향기를 품지 않는 풀꽃은 없다. 삶에 깃들이기 위해 정성껏 자신의 영혼을 켜는 불꽃들의 향연을 모은다. 삶과 죽음을 겪는 다른 개체들의 삶에 대해서, 각각의 몸에 대해서, 어떻게 내면화 할 것인가에 대하여 화두로 삼는다. 또한 어떻게 삶의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문제를 자연에게 묻고 있다. 이 땅에 꽃 피우는 ’, ‘’, ‘이슬’, ‘바람등의 본질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이 관계망 속에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인간은 가난하고 비루한 존재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은 욕망적인 존재일 뿐이다.공양은 한 인간의 지극한 마음이 빚어 내는 존재론적 성찰의 행위가 된다. 소멸의 아름다움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나무들은 저마다

붉으락노르락 한 생애 절정의 기

단전 아래로 모으고 있었다



이때, 난데없이 세찬 빗줄기가 도둑처럼 다녀갔다


이때, 하늘은 허망하다 싶게 텅 비고

젖은 문장들로 가득해진 땅은

외로 누워 온몸을 말아 끙끙 앓기 시작했다


이때, 마실갔다 돌아온 까치 두 마리가

나무 위 젖은 집에 들지 못하고

영혼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때, 헛기침 같은 문장 하나에도 병이 드는 나를 보았다

                                                                             

                                                                          

                                                                                 ―「이때,전문





   슬픈 주문처럼 이때,가 발산하는 서정은 나무의 삶과 세계를 뒤돌아본다. 나무에게도 가혹했던 시간,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삶은 고독한 과정이었음을, 그 삶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나무들은 기도문을 외우듯 수시로 중얼거렸음을 감지해내고 있. ‘붉으락노르락의 화 의 기를 다스리기 위해 단전 아래로 기를 내리는 행위는 도에 이르기 위해 면벽하는 행위이다. 삶의 표정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나무의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도 고통스럽다. 나무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젖은 문장들로 가득해진몸으로 진정한 사람의 노래가 탄생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존재한다. ‘세찬 빗줄기도둑처럼 왔다가는 상황은 절망의 상태를 나타낸다. 나무는 참혹하고 열렬하게 삶이라는 병을 앓는다. ‘기침에도 에 드는 나무는 시인 자신이다.

   자신의 모든 경험과 사유 그리고 감각을 모아 빚는 시편이다. 허형만의 시에는 도처에서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깨달은 풍경이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운명적인 시간 앞에서 영혼의 허기가 시로 육화되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3. 비애의 미

   허형만의 시에서 거듭 확인되는 슬픔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비애의 정서임에 틀림없다. 페이소스야말로 인생과 자연의 온갖 비밀을 담고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그의 시적 특징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담쟁이 한 줄기

2월의 벽을 기어오르고 있다



주저보다는 결단이 필요할 때

그것이 비록

손을 내저어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텅 빈 허공일지라도

담쟁이는 올라보는 것이다

기어서라도 가보는 것이다

2월의 벽이

차가운 폭력의 그림자를 거두어내고

햇볕에 달구어지는 걸

함께 견디는 것이다

희망인 것이다



지금은 비록  

한 줄기 담쟁이일지라도

2월의 벽은

담쟁이의 미래와 함께

장차 무성한 평화의 숲을 꿈꾸는 중이다



                                      ―「2월의 벽전문




   삶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극에 달한 시적 자아의 상실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가운데 쓸쓸히 존재하는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보며 현실을 처절하게 인식하는 모습이다. 담쟁이가 벽을 타기에는 지나가야 할 꽃샘추위의 벽이 몇 개 더 남아 있는 절기이다. 벽을 기어오르며 시인은 고독하게 살아내고 그 대가로 성찰이라는 선물을 수확한다. 꿈에 이르기 까지는 인간이 겪어내야 하는 칼날 위의 시간이 존재한다. 결단과 투쟁 없이는 진전시키기 어려운 미래, 제목에서부터 담쟁이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응집해 보여준다. 담쟁이의 결단으로 벽을 타고 오른다. ‘텅 빈 허공일 것이라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음이 읽히고 있다. 담쟁이는 봄이 올 것을 아는 식물의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기어코 다시 오르는 성실한 자세와 생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삶은 벽을 타고 올라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성되어야 하며, 새로운 미래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결단이 아름다운 담쟁이 벽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매달릴 수 없지

가벼워야 무거움을 뿌리치고

무거움 속내의 처절함도 훌훌 털고

저렇게 매달릴 수 있지

나뭇가지에 매달리고 나뭇잎에 매달리고



그대로 매달릴 곳 없으면 허공에라도 매달리지

이 몸도 수만 리 마음 밖에서

터지는 우레 소리에 매달렸으므로

앉아서 매달리고 서서 매달리고

무거운 무게만큼 쉴 수 없었던 한 생애가 아득하지

빗방울이 무겁다면 저렇게 문장이 될 수 없지

그래서 빗방울은 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이지



                                                    ―「가벼운 빗방울전문




   『가벼운 빗방울은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허형만 시인은 1973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淸明(1978)을 시작으로그늘이라는 말(2010)을 거쳐 가벼운 빗방울(2015)년에 이르는 40년이 넘는 시력을 가진 시인이다. 15권의 시집을 바라보며 시집과 시인의 삶이라는 자신의 역사를 헤아리게 된다. 삶이 가진 난제들을 다스리던 시인의 고단하고 쓸쓸한 삶의 한 국면을 엿볼 수 있다. 언제나 자신의 몸을 낮추던 빗방울 가득한 생애의 내면적 풍경을 바라보고 있. 시인에게 시는 빗방울아득히 사무치는 문장으로 우리를 젖게 하는 실체이다. 나뭇잎에, 허공에, 우레 소리에, 매달리던 표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딘가에 매달려야 하는 일이 여린 인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번민을 만든다 . 그러면서 진정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자기반성적 도구가 생기게 된다. 이 시는 우리가 수없이 경험하던 일이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일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또한 빗방울이 무겁다면 매달릴 수 없다는 첫 행의 발설은 참된 인간의 길에 닿은 존재론적 문답을 완성해간다. 빗방울이 되어 삶을 응시하며, 달리는 일로 견뎌낸 삶은 시인이 가진 내적인 힘의 분명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자화상 같은 시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4. 운명의 미

   “소금은 하늘과 잘 어울려야 제맛이 나고//술은 대지의 숨결에 잘 길들어야 무르익는다//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한 생애도 똑같다 (한 생애) 생애의 과정을 높은 벽으로 간주해 벽을 마주하고 홀로 깊이 사색한 후 완성된 문장들.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몸부림이 시의 배경음악이다.




최초의 햇빛처럼 엎드렸던 땅이

벌떡, 벌떡 일어서 나무들은 흔들어보는 것인데



최초의 바람처럼 얼음에 갇혔던 새들이

, 휙 바람칼을 세워 골목을 쏘다녀보는 것인데



사랑을 확인하듯 수평선이 팽팽하게 한일 자로

, 탁 물결을 내리쳐보는 것인데



세상에나, 기적처럼 천지에 피가 도는 소리

당신 앞에 말랑말랑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입춘立春전문





   입춘은 봄으로 접어드는 절기다. 생각의 관점에 따라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생로병사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봄이라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볼 수도 있겠다. 시의 정황으로는 다시 봄이라고 해석되어진다. 존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맨 몸으로 견뎌낸다. 계절과 계절이 변화하면서 만들어내는 사랑의 부딪침과 깨진 유리조각의 리듬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봄에 이르렀다.

입춘은 소멸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겨울을 이겨낸 존재들의 새로운 생성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소멸과 생성의 반복되는 우주를 영사기처럼 시각화시키고 있다. 이별과 상실 속에서 주체의 내부는 거품 같은 허상을 버리고 나무와, , 그리고 물결들로 빼곡하게 채워진다. ‘기적처럼 천지에 피가 도는 소리가 신탁처럼 도착한다. 그것은 마치 벌떡 일어나보겠다는 골목을 쏘다녀보겠다, 물결을내리쳐보겠다는 시인의 선언과 같다. 그러므로 시인은 다시 봄을 맞이할 것이다. 생의 아름다운 무늬가 경이롭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입춘 풍경이다.



허공을 한 바퀴 돌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 한 마리

나를 바라본다



새는 허공이

허공인 줄 안다

우주의 빛이

모두 허공에서 숨쉬기 때문이다



새는 나무가

나무인 줄 안다

나무 중에는

30미터 깊이까지 뿌리를 뻗기 때문이다


허공에도 데이지 않고

나무의 속울음에도 젖지 않는

부드러운 바람칼

새가 나와 눈을 맞춘다



                                                     ―「전문




   상처를 극복해온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다가 잠시 쉬고 있는 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들꽃이 텅 빈 바람 속에서 아프게 꽃잎을 여는 시. 입춘이다.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시인은 스스로 새가 되어 세상 쪽으로 길 하나를 연다. ‘새는 허공이/허공인 줄알며, 우리는 모두 허공에서 숨 쉬는 존재라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무인 줄 아는 새 앞에서 어떻게 생성의 길을 열 것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라는 것을 아는 새이기 때문이. 모든 길은 지나온 길이며 허공에도 데이지 않고 속울음에도 젖 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칼되는 종심의 나이게 이르렀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은 공식이나 이성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경험이며 각자가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경험해야 한다. 가르침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지만 아무도 대신 그 길을 갈 수는 없다.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는 정신은 오감이 고요해질 때 그리고 안정된 정신을 통해 이르게 된다. 옥타 비오 파스는 우리의 모든 활동은 오래된 오솔길, 즉 양쪽 세계를 소통시키는 잃어버린 통로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는 우리가 잊고 있는 것, 즉 우물에 빠진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해준다. 리 삶의 가장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는 몸의 부활이기도 하다.






**약력: 2004심상으로 등단. 문학박사, 현재 한양대 출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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