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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미니서사/박금산/결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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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결혼 생각 ―『삼국유사』의 견훤에 기대어
딸이 고백한다.
“밤마다, 남자가 자주색 옷을 입었는데 제 몸 속에 들어왔다가 사라
져요.”
아버지가 말한다.
“꿈에?”
딸이 말한다.
“아니오.”
아버지는 말이 없다. 딸이 요구한다.
“그 남자를 만나주세요.”
아버지는 딸의 말을 풀어본다. 자주색 옷을 입고 오는 한 남자가 있
어, 그와 매번 동침합니다. 단서는 자주이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다. 아버지는 깊게 묻는다.
“자주색이 분명하니?”
“…….”
딸이 대답을 감춘다.
봄밤이었다. 봄밤에 옷 빛깔을 분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발을 전
제한다. 자주색 입은 남자를 반기기 위해 촛불을 켰던 것인가. 내 딸
이? 도둑은 스스로 불을 켜지 않는다. 도둑은 주인이 불을 켜려하면 목
을 짓밟는다. 몇 차례였을까. 딸의 남자는 자주색을 입고 왔다. 물처
럼 흘러 들어와 딸의 침실을 적시고 갔다. 아버지는 딸의 옷고름을 바
라본다. 결정을 내린다. 자색이라면 괜찮다. 왕족의 색깔이다. 네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 아버지가 말한다.
“이렇게 하자.”
“…….”
“저것.”
아버지는 반짇고리를 가리킨다.
“그 분의 저고리에 실을 매어 보거라.”
아버지의 말은 ‘그 분’이라는 존대로 바뀌어 있다. 자색이기 때문이
다. 그분은 미끼를 삼키고 심해로 돌아가는 물고기처럼, 작살을 맞고
가는 고래처럼, 그러나 고통 없이, 실을 끌고 돌아갈 것이다. 딸은 아리
아드네처럼 남자와 사라질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이다. 실을 따
라가면 그곳이 미래이다.
날이 밝았다. 아버지는 실을 따라 간다. 실은 뒤란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눈 위에 난 발자국을 좇듯 천천히 걷는다. 실이 담장 아래에
서 끊어진다. 땅은 낚싯바늘을 삼킨 장어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땅
위에 딸의 저고리와 버선이 놓여 있다. 딸은 새 옷을 입고 시집을 갔다.
**약력:소설가. 1972년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
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
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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