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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미니서사/김혜정/거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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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07회 작성일 16-12-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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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거미의 시간




죽는다 생각하니 영 찜찜해.”

누가 아니래.”

아직 줄이 길어서 내 차례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기왕 왔으니 가야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 조금 더 있다 가도 늦진 않아. 슬쩍 도망쳐버릴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바위처럼 굳었

.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낮고 묵직한 소리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침대에 눕자 한 사람이 몸을 씻어낸다. 그동안 저지른 잘못이나

   죄마저 씻어주겠다는 몸짓이다. 하지만 죄는커녕 발톱 밑의 때도 안 닦인다. 오동나무관이 가지런히 줄을 지어 있다. 관 옆의 책상에

영정사진이 있다. 인물이 번듯하다. 설마 나일까, 했는데 나이다. 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고 사실이어서

흐뭇하다.

   그 옆에 서서, 수의를 입는다. 어색한 손을 둘 곳을 찾지만 마땅한 곳이 없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삶이라더니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유언을 쓰고 날짜와 서명을 하면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

   정적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간다. 몇몇은 여전히 하얀 종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갑자기 누군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는 전염되듯 퍼져나간다.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무심해서 더욱 냉혹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들어가세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등을 떠민다. 관 속으로 들 어가 눕는다.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관 뚜껑이 닫힌다. 얼마 남지 않은 틈마저 어둠이 채운다. 이어 못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관 위로 흙이 뿌려진다. 고요가 몸을 뒤덮는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거미 가 된 아라크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 나는 점점 깊이 빠져든다.







**약력:1996<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 , 독립명랑소녀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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