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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산문/김영식/시詩와 시時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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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90회 작성일 16-12-29 19:00

본문

산문

김영식






망우리에서 시와 시를 읽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망우리공원의 비석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당대를 살다간 대표적 시인의 시와, 감히 우열을 논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서민의 애끓는 마음이 그들의 비석에 새겨져 있다.



시인 박인환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가수 박인희의 노래로도

유명한 시 세월이 가면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유족과 친구들은 고인 별세 다음 해 추석에 고인을 기리기에 가장 어울리는 글을 비석에 새겨 넣었다. 검은 오

烏石에 또렷이 새겨진 글보다 오히려 세월의 풍상에 바란 글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90년대에 세워진 묘 입구의 연보비에는 그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

나는 것일까


  하지만 그는 시의 의지와는 달 리 통속하게 살지도 못하고 이곳 망 우리로 떠나왔다. 50년대의 대표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문학자의 직

무유기로 대중은 아직도 목마소아과병원 대기실의 흔들목마 쯤 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목마는 고인 무덤에 함께 묻힌 부장품으로, 고인을 태우고 방울소리를 철렁거리며 하늘로 떠나는 것이다.




시인 김상용 향수



인적 끊긴 산속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비석 뒷면의 이 시처럼, 김상용 시인은 인적 없는 망우리 산속 에서 돌을 베고 하늘을 보고 있다. 그리고 대표시 남으로 창을 내겠 그대로, 묘는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고,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다. ‘있지도 않은 고향은 무슨 말인가. 지용의 시 고향에서도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하듯, 고향은 일제 에 의해 빼앗긴 고향이 되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고, 그리움의 원천인 고향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우리 유전자로 내려오는 저 먼 중앙 아시아의 벌판일 수도 있다.




천상병의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

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천상병 시인이 이곳에 계

신 것은 아니다. 어느 고인이 천상병의 시를 비문에 새겨 넣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어여간 나의 마음

가르어간 나의 몸

어이고 가르니

가는 곳 그 어딘가

영화롭다 주 계신 곳

아버지 가신 곳

요한아!

계서 편히 쉬니

설레던 마음 맑아지다

엄마




   이곳에는 당대의 언어가 남아 있다. ‘어이에다이다. 칼 따위로 도려내듯 베,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다라는 뜻이다.

어머니의 마음과 몸을 어이고 가르며 떠난 아들 요한의 나이는 불과 18. 오른쪽 면에언니 봉학 세움. 1950.6.10’이라 새겨져

있다. 언니는 원래 형의 서울말이었다.




부모가 아들에게



1.

아가 [啓佑] 재온아 너의 천재와 영걸을

어데버리고 이땅에 길이 잠들엇느냐

너를 그리는 내 마음 북해에 사뭇치는 파도인가 하노라.

소화 17(1942) 225일 아버지 어머니



2.

아까워라

그 효성 그 성격 그 재간 그 용모 어데 버리고

이땅에 길이 잠드렀는고

인생의 꽃이 피기도 전에 떠러졌으니

의사로서 너를 구원 못한 내 마음 더욱 앞으고나

다시 못볼 너를 그리는 부모의 마음

북해에 사모치는 파도인가 하노라

1950425일 청명일

부 현규환 서 건립




   ‘啓佑는 일본 이름으로 게이스케라 읽는다. 재온은 해방 전에, 수는 1950년에 부모보다 현세를 떠났다. 두 무덤이 나란히 있다. 친 현규환은 1901년 함북 경성에서 출생하여 경성의전(11) 졸업, 만주도문공립병원장과 서울적십자병원장, 대한의사협회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 현업을 은퇴한 후에는 자신의 만주 생활의 경험을 계기로 삼아 우리나라의 이민과 유민의 역사를 고대부터 전체적으로 정리한 한국유이민사 韓國流移民史(1976, 흥사단)라는 방대한 서적을 20년에 걸쳐 발간하였다. 1972년에는 의사신문에 한국의학의 백년

야사를 쓴 기록도 보인다.

 



딸이 아버지에게



엄한 위엄 속에서 섬세한 애정으로

밥알 한 톨 아껴 남의 어려움 살피시

책크리틱밥알 한 톨 아껴 남의 어려움 살피시다

싱그러운 젊음으로 여기 수려 동산에 편히 잠드셨네

6월 어느 날 이른 귀향길에 오르심은

훗날 저희들 마중을 위한 등불의 준비 때문

아버지의 두 귀 잡고 뽀뽀하며 안녕을 빕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앞면)

  박은히 자는 곳

  님이 가시면서 부탁한 그대로 어린것들을 나

혼자서라도 잘 키우리이다 님이여 우리 다시

만나는 영원한 나라에 빛나는 나라에 함께 만

나리 다시 만나리. 갈린몸 정훈

(뒷면)

  님이여 그대가 마즈막 말로 편안치 않지만

잘 터이니 깨우지 말우 하면서 곱게 자던 그 얼

굴을 나는 똑똑히 이 눈으로 보았나이다 잘자

오 님이여 아름다운 그 말이여 님이 자고 있는

이곳에 나는 님이 하시단 말을 그대로 기록하였나이다.

  옆면에 1954년 월 일 아침 610분 묘주○○


부부는 일심동체였으나 사별하니 갈린 몸이 되었다.




벗들의 애곡



  오호라 활짝 피여도 못보고 광풍에 스러진 님이여 얼마나 원통하게 눈

을 감으셨나이까 그러나 생자필멸은 만고불역의 진리이거든 인간의 생명도 앞가고 뒤서는 것뿐이

오이다. 혁명정부의 뜻을 받드러 청신한 역군이 되여보려고 마치 니해 泥海를 뒤덥는 신조 新潮와도

같이 슬기롭게 분투하든 님의 기상을 우리는 영원히 아니 잊으오리다. 사바에 남은 벗들 가신 님

그리워 애곡하며 초라한 석비 세워 재천의 영을 위로하노니 님이여 유택에서 고히 잠드소서.

19621118일 벗들




  비명은 당대 세인의 인식을 보여준다. 필자 세대는 학교 때 혁명 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군사정변이라고 하는 듯하다. 그 당시 5·16 후에는 많은 대학생이 침묵했고 사상계의 장준하도 지지를 한 바가 있다. 고인은 5·16 후인 8월에 서울시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였

으나 다음 해에 37세의 나이에 과로사한 듯하.




아들이 어머니에게



   아아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삼십 미만 이십팔 세 때 푸른 나이 아버님을 여의고 홀로 되시었습니다.

그때 불초자의 나이 겨우 여섯살과 두살이 였습니다. 청상의 몸으로 소자들을 길러주셨습니.

 길러만 노셨습니까 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늘 불초자가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것도 어머님의 백수정같이 맑으시고 난초같이 향기 높으신 그

자세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뿐이오이까 해방 뒤 국토가 양단되어 고향

길주를 뒤에 남기고 남으로 내려오던 그 가시밭길 아직도 눈에 삼삼 어리

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춘추69세로 윤삼월 구일 합연 불초자를 남

기고 이 진세 塵世를 떠나셨습니다. 어머님 호천망극 어머님을 주소로 생

각하는 지극한 정을 이 빗돌에 새겨 후에 자손에게 전합니다. 1967년 사

월 일 건립/그 효심에 부쳐 월탄 박종화 지음/사자嗣子 ○○ ○○



   월탄 박종화는 1901년생이니 모친과 가까운 사이였거나 자식의

스승이었던 것 같다.




자식이 어머니에게



1.

함흥명지 이원 땅에, 김씨가에 탄생하니

화선이라 이름 짓고, 신문에 출가하여

신이선과 짝이 되니, 천정배필이 않인가

신의주의 복음 자리, 안락도 하였는데

8.15에 부는 바람, 한강으로 인도하네

용산에 자리 잡고, 천수를 기약할제

매난국죽 피를 이어, 네 자매 키울 적에

어른이 먼저 가고, 뒤따라 또 가시니

그 얼굴 그 목소리, 어느 곳에 듣고불제

한 많은 이 세상이, 어이 그리 짧았던가

자녀들 애통하여, 돌을 깎아 세워 놓고

복원봉축 비옵나니, 극락천국 드옵소서

1956419




8언절구로 지어 리듬을 붙여 읽

었던 시절의 글이다. 필자 임의로 쉼

표를 넣었다.



2.

바람 같이 오시어

아무 말씀 없으시고 못하시고!

구름 같이 가오신 아버지

이제 엄마 그 구름에 태워

극락으로 가시어요.

못난 자식들 이제야

꽃 한송이 놓고 왕생정토 두손 모읍니다.

그리웁고 고맙습니다.

2015.4.5. 막내 ○○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이제야 막내아들이 세운 비석이다.



3.

저 태양이 만물을 살리움 아는 한

저 화려한 꽃들은 그 뿌리의 역사로

피어났음을 아는 한

우리 가문에 불멸의 공을 쌓으시고

여기에 누우신 어머니의 거룩한 모

습을

길이 길이 찬양하리라/196145.



자신의 뿌리를 잊은 개인에게 미래가 없듯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부모를 그리고 민족의 선현을 길이길이 찬양하리라.





**약력:수필가·번역가. 2002리토피아신인상(수필). 역서 라쇼몽, 러기, 무사시노. 저서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2009년 문광부 우수도서). 201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꼭 지키고 싶은 우리 문화유산 > 공모에서 망우리역사문화숲길로 산림청장상 , 201 3년 리토 피아문학상, 2013년 서울연구원의 서울스토리텔러 대상 수상. 매달 마지막 토요일 오후 망우리공원 답사 진행. 문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홈페이지 (http://www.nationaltru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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