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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소시집/김설희/코골이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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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986회 작성일 16-12-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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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김설희





코골이




짐 한 덩이



놓았다가 들었다가



놓았다가 들었다가



놓았다 들었다



놓았다 들었다



밤새도록





안개, 자욱하다



높은 하늘이 낮아져 안개에 덮였다



뼈대 굵은 높은 빌딩이 물렁한 안개가 된다
길을 찾아 쉼 없이 구르는 타이어들
안개 속, 길은 도무지 알 수 없어
속도를 줄이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잠시 쉬어가라는 신호등이 있었던가
맘 놓고 건너가라는 횡단보도가 있었던가
길은 깜깜하다



윤기 흐르는 푸른 나무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햇살을 찾지 못하고 젖은 채 헤맨다



무엇이든지 낚을 것 같은 낚싯대도
밥 냄새가 무르익을 것 같은 주방가구점도
어디든 달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차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날



습도가 높고 안개가 많다는 일기예보 뒤에
카드수수료가 내린다는
카드회사는 뭐 먹고 사느냐는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라디오 뉴스는
안개 속에서도 명징하다



춤 없는 노래, 짐승들의 울부짖음만 뚜렷한
캄캄한 이 한 낮이
내막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이 안개에 휩싸인다
산 것과 죽은 것이 함께 묻힌다





물집




처음엔 그냥 입술 한 쪽이 근질거렸어
찬 눈이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
경계도 없이 조금씩 넓어지느라 입술이 들썩였어
살갗이 부르터 오르는 만큼 통증이 자랐어
밖은 눈이 펑펑 쏟아져
앞은 깜깜해
바람 한 줄기가 쏟아놓은 말처럼
눈송이 앞뒤 없이 흩날렸어



저 눈송이의 어느 씨눈이
몸속 구석구석에서 숨죽이다 살아났을까
진물 같이 뿌연 것이 들어차 있었을까
집은 더 높고 넓어지고 눈송이처럼 분열되고 있어
부풀대로 부푼 고갱이가 터지고 있어



누가, 부피가 팽창되면 어느 쪽으로든 터진다고 했을까



얼어도 곪아도
맞아도 찔려도
결국 터지는 것



나의 밖에서 집 하나가 산산이 부서지고 있어
감추었던 발톱들이 보여
발이 박차고 나온 자리에 암호처럼 흉터가



너무 깊이 박힌 심지는 감출 수 없었어





초파리



터진 살결에서 흘러나온 홍시의 울음이다
달착지근한 맛



어디서 왔는지 초파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빈 배를 채우느라



파리채보다 큰 사람이 앞을 지나가도 모른다
굶주림은 밝은 눈을 어둡게 하는 마력이 있는걸까



접시를 부뚜막으로 슬쩍 옮긴다
칼집은 컴컴하고 칼은 예리하다



멀쩡한 홍시를 고르는 사이
초파리들이 또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옆에 칼날이 있는데도 초파리들은
빨간 홍시의 뺨에 올라앉는다



홍시의 머리를 누른다
홍시의 눈을 찌른다
해안 같은 옆구리에 흡입기를 갖다 댄다



몇 번 더 자리를 옮겼다
그럴 때마다 그릇 주변 소란은 여전히 둥그렇다
어디든 정확히 찾아내는 먼지보다 작은
위와 창자들




한숨에도 날아갈 것 같은





딱따구리



뻘 뒤지는 어부처럼 삽질을 해댄다
삽날에 잘려진 시간이
껍질을 뚫고 나무속을 파고든다
박 속을 끄집어내려 구멍을 내 듯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찔러댄다



벌레를 낚으려는지
새끼를 낳으려는지



서 있는 뻘 한 그루와 부리가 맞닿는 정점에서
뼈 닳는 소리
들창을 돌아나가는 세레나데 같이
잎과 잎 사이 머뭇거리다
절벽 아래로 산산이 부서진다



겨드랑이 같은 오망한 집 하나 생긴다



비바람 피할 수 있는 곳을 장만한다는 것은
저렇게 수만 번 부딪쳐
주둥이 근처 센털이 닳아 짧아지고
뾰족한 부리가 뭉툭해지고
뼈가 녹고
몸이 야위어져 작아진다는 것



그러나 생은 뜬금없어
사그라진 살과 뼈가 만들어 낸 그 집에
처음 보는 오색뻐꾸기가 살아가기도 하는 것





시작메모



비행기 한 대에 실려 가는 먼지들은 먼지인 줄 모른 채 살아있다.
풀잎 한 모서리처럼 가느다란 틈으로 햇살 한 줄기 차고 들어올 때, 먼지의 몸은 잠시 반짝거리다 사라진다 이렇게 빛나는 시절은 찰나다.
빛 속에서 먼지들의 움직임은 샅샅이 다 밝혀진다.



오장육부가 있는지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있을 것 같은 먼지들.
빈 창자를 채우려고 홍시의 터진 살결에서 흘러나오는 알큰한 울음을 먹어치운다.



상대의 울음이 어디로 가든 모든 더듬이를 동원해서 찾아간다. 도망치며 피 흘리며 절규를 하는데도 주린 배만 채우면 된다. 굶주림에는 체면도 염치도 안개처럼 다 덮어버리고 배만 부르면 된다.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먼지들이여.
비행기가 언제 이륙했는지,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먼지들이여.
먼지들이여.






**약력: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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