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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신작시/이병초/답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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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병초
답장
라디오가 나를 물고 직직거린다
개 짖는 소리뿐인 산중에
사락사락 눈이 내린다
하루를 딱 닫아건 오리나무숲께로
마음만 갔다가 솔가리 타는 냄새에 에둘리어
뒤도 못 캐고 눈을 맞는 밤
몸이 작으니 물것들이 하도나 덤벼
여러 흉터를 남겼지만, 소주값이 더 들더라도
오늘 밤만이라도 사랍답게 좀 살자고
너나들이로 시간을 목구레에 가뒀던 내 본색이
서푼어치도 안 된다는 게 가장 아팠다
이런 물짠 인심을 몸은 더 버틸 작정인지
나는 왠지 살고 싶었고
눈에 덮인 눈부신 아침을 그리워했다
더디게 타는 담배처럼 눈 내리는 밤
만두피같이 얇아진 마음 더는 터지지 말자고
고개 숙일수록 옆방 아줌마가 조심조심
물 끼얹는 소리는 뜨거운 혀끝이 되어
빗금 칠 수 없는 더운 피를
라디오가 물고 직직거리는 밤
하루를 딱 닫아건 천지를 열듯
마음 두꺼워지라는 듯
사락사락 실업수당 같은 눈이 내린다
퇴근길에
숙소 옆에 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 검둥이 목에 감긴 줄이 너무
꽉 조여진 것 같아서 그걸 풀어주려고 다가갔는데 검둥이는 이빨 드
러내고 앞발로 버티다 대문 지주목 밑동을 야물게 씹어버렸다 위아
래 이빨이라도 부러졌는지 피가 질질 흐르는 잇몸을 핥으며 바들바
들 떤다 겁에 질린 검둥이를 껴입고 바들거리는 햇살, 쭈그러진 개
밥그릇에 담긴 황당한 햇살이 피 흐르는 잇몸에 박혀 빛난다
**약력:전주 출생. 1998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밤비』, 『살구꽃 피고』. 불꽃문학상 수상.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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