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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유정임/화분에 물을 주는 남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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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I
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
유정임
화분에 물을 주는 남자
베란다 화분들에 물을 주기 전 남자는
웅크리고 앉아
말라 죽은 잎들을 꼼꼼히 따 낸다
이미 떨어진 것들을 정성스레 쓸어 모은다
꽃에 물을 주는 남자
그녀에게 겨우 제 몸에 한 조각을 떼어주고
다 주었다고 착각한 세월이
쓸어 모은 나뭇잎 만큼이다
그녀의 살점을 겨우 한 입 베어 물고
다 먹었다고 착각한 시간들이
떼어낸 나뭇잎 수보다 더 많다
그동안
한 번도 뒤돌아 본 적 없는
한 번도 쓰다듬어 주지 못한
세월 같은
꽃들에게 물을 준다
당신 살점 한 점 물고 사는 그녀에게 물을 준다
그녀 살점 한 입 베어 물고 산 자신에게 물을 준다
그 등이
둥글게 굽었다
별리(別離)
앞서가는 낯익은 남자의 한 걸음쯤
뒤에서 걷는 여자
무척 낯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사람 속에 있어도
풍경조차 담아내지 못한
청 동 빛 그림자
울 줄도
사랑 할 줄도
미움도 없는
표정이 없는 표정으로 멈춰있는 뒷모습
영혼을 담아내지 못한 그릇 같다
낯선 저 여인.
거울을 보면서 수 없이 퍼 담았던
세월이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그녀가 가고 있다
울음도 두고
사랑도 두고
미움도 버리고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가슴 밑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시린 그림자 하나.
**약력:2002년 리토피아 봄호 등단. 시집『봄나무에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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