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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장재원/문열리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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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I
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
장재원
문 열리다
한 우주가 폭발하며
순간이 피워낸 얼굴이 꽃이라고,
투명한 유리문 밖의 꽃과
꽃이 되어 그 꽃을 바라보는 안의 꽃은
순간이 자각한 제 얼굴이라고
아무도 읽어 주지 않는 색 바랜 책의 부록 같은
홀몸 노인의 베란다
큰 화분들 틈에 가려져 있던
작은 화분 위 선분홍색 게발선인장꽃이 활짝 피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듯, 마는 듯
이리도 신령한 화원의 문을 열고
저리도 곱게 고요히 피어나,
죽음보다 강한 번개불로 솟아나
쇠리쇠리한 오후의 햇빛 드리우는 아파트 거실에
홀연, 생생한 피를 펌프질해 주고 있는 꽃은
순간의 무구함이 깨운 잊혔던 제 얼이다
문 저편 얼굴이 열심히 게워낸 것이 꽃이듯
꽃 핀 얼굴은 세상을 향한 애틋한 문 열림이다
문 닫힌 외로움이 꽃으로 피어난다
꽃들로 환한 문 안팎 세상이다
내 손금 속 등산화
오래 전
푸른 산언덕으로 뻗은 오솔길 같은 감정선에 비해
희미해진 샛길 같은 결혼선 손금의 손을 펼쳐
짝사랑 애인 대신 샀던
멋진 수제가죽등산화
콩깍지 벗겨지자 찰떡궁합 아니었다
올라갈 땐 봄 산이었다가도
내려올 때는 늘 겨울 산
짓눌리는 발가락들이 흐린 운명선 위에서 끙끙 앓았다
;안 맞으면 새 구두라도 재깍 차 버릴 수 있는 두뇌선은
원래부터 깊고 뚜렸했다…
;비록 미약한 태양선이지만 언젠가는 나긋나긋해지겠지…
높던 코 납작해지고, 탱탱했던 뒤태도 쳐지고,
볼엔 어느덧 검버섯도 폈지만
여전히 사내의 발 부드럽게 감싸줄 줄 모르니
이젠 정말 아주 벗어 버리고 싶다
그러나 오늘도 다시 신는 내 손금 속
망할놈의 이 할망구!
한꺼번에 활짝 피어나는 순간,
연두빛 봄물이 번져나간다.
온 세상,
봄내음 천지다.
**약력:2008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빈터』,『왕버들나무,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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