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고은산/로프맨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특집II
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
고은산
로프맨
뜨네기 성향의, 무더위가 판치는
도심의 열섬 속으로 흐르는 온도들
절뚝이는 계절의 혈관 속으로
하루의 젖산이 흥건히 젖어든다
도심 한복판 높은 빌딩 하나의
유리창 벽으로 뜨거운 기온이
줄줄 미끄러진다
햇빛을 강하게 닦는 청년의 손으로
먼지들이 자리를 바꾼다
유리창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청소 도구들의 상하 운동은
반들반들하다
그의 팔뚝 힘줄은 매달린 로프를
팽팽히 움켜쥐고 있다
로프맨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은
지금, 발아래 세상을 낙엽들의
눅눅한 조소로 바라본다
그를 포함한 3인 1조의 로프맨들,
30센티미터 빌딩 난간을 딛고
아래의 지상 위 세상의, 바쁜 눈동자들,
시력들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인다
그의 손바닥 미는 힘으로 매끈함을 창조하고
얼굴에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들은
몸 밖으로 땀의 함량을 높여간다
땀의 함량이 마르는 정도에 따라
점점 작아지는 체온의 감각은
마무리 작업을 재촉한다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경적소리 하나가
로프 매듭을 헐겁게 잡아당긴다
도심의 열기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하루 물기를 제거하는 마른 걸레에 묻은
바위틈 소나무 줄기 같은 生은
더욱 단단해진다
몇 년간 지속된 로프의 단단함들이 모이고 모여
그의 미래는 명백히 분홍빛으로 끌어당겨질 것이다
사실, 그는 꾸준히 저축한 돈으로 머지않아 새로운 일을 할 것이다
일을 마친 그의 발바닥 하중엔
도심 길바닥을 가볍게 누르는 소리로
청청靑靑하다
오늘, 빈 리어카 속에 담긴 알레그로의 음향
흩어지는 새싹 향기를 침식시키는 소리가
커가며 길목을 붙잡고 있다
한 쪽, 작은 도심 도로변으로
리어카 바퀴가 남루하게
보도블럭을 힘겹게 누른다
바퀴가 움직인 만큼 한 노파의 인생은
녹슨 세월의 창끝을 무디게 해왔다
뭉뚝한 손가락은 벌레의 심장을 다독이며
전진의 잎맥을 따라 하루를 마감하곤 했다
뜨거운 타액의 표정이 햇살로 다가와
등짝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원초적 행위로 가득한 계절의 향기는
시들시들한 체온으로 온몸, 동맥을 휘감는다
하루의 후미진 냄새는 빼곡하게
그녀의 바지주머니를 적신다
간간히 오가는 화폐는 다행히 방패가 되어
그녀의 표정을 은수저 빛깔로 다스린다
불법이민처럼 다가온 쨍쨍한 계절의 한중간으로
겹쳐진 피로 색깔이 가늘어진다
누룩곰팡이를 닮은 인고의 계절을
물리치는 잇몸은 아직 튼튼하다
시간이 흐르며, 그녀의 리어카 위로 쌓인 과일들의 개수가
약화됨에 따라, 감각들 흐뭇하게 떨어진다
오늘은 시계침의 전진 따라
리어카 무게가 유난히 가벼워진다
이 가벼움은 흔들리는 촛농처럼 흐르고
어스름 몇 점, 리어카를 밀고
제법 먼 집으로 향한다
발꿈치 움직임 따라 꽃잎의 표정이
바짓단으로 떨어진다
저녁녘, 초라한 대문 곁에 놓인 빈 리어카엔
가계를 지탱하는 소리 알레그로로 퍼진다
**약력:2010년 계간《리토피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말이 은도금되다』,『버팀목의 칸탄도』.
- 이전글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정치산/기억의 시간 외 1편 16.09.08
- 다음글60호/특집II/60호 발행기념 리토피아의 시인들/천선자/파놉티콘·15 외 1편 16.09.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