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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소시집/강인봉/그리운 이여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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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67회 작성일 16-08-23 17:37

본문

소시집

강인봉

 

 



그리운 이여

 

 

신륵사 구층 석탑 아래서

나는 보았다

구경 나온 사람들이

강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소리 없이

강물이

그들의 가슴속에 흐르고 있는 것을

 

그리운 이여

당신도

눈빛 달싹이며

이 꽃들이

사락사락 이우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물새 몇 마리 파닥이며 날아오르고

배는 다시 서서히

남한강의 깊은 곳에

흰 물살을 가르며

한 뼘씩 아렷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운

나의 그리운 이여

 

 

 

 

코스모스

 

 

사랑이여

내 나이 열아홉 살 때

허릿매가 가느른

그 강가에서

맨 처음 생각한 것은

네 눈에 흔들리는 촛불이었네

      

흐르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리

바람만이 아니리

별빛 차게 어리는

그 강가에서

난생 처음 어둠을 애무하다가

한 생각 문득 타오른 자리

 

사랑이여

온몸을 풀어놓는 그 강의 빠른

격랑이여

거기서 누가 또

목숨의 깊은 비늘을 터는가

 

이제 나는 드디어

옷 말리면서

네 붉은 키 너머로 시방 보는 것은

푸른 하늘 오가는

흰 구름이네

 

 

 

 

영산홍

 

 

저만치

그이의 푸른 물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아득한 물레방앗간이 보인다

 

별무리 착한 눈빛들이듯

선히 나를 흔들어 오는

그이의 산골 말씨

 

몇 귀는 끼룩끼룩 물새가 되어

창공을 떠오르고

 

몇 귀는

옛이야기처럼 깊어가는 이 밤

차츰 손끝이 떨려오는 나의 사랑아

 

이젠 그이의 베갯모

선홍빛 바닥을 깔고 누워서

멀리 꽃사슴을 그린다

 

 

 

 

昇天

 

 

용이 오른다

봄의 먼 불빛들이

하염없이 돋는

돌의 한복판

 

꽃이여

마침내 목숨을 토하는가

 

그 언젠가

울려다 울려다 만

울음을

 

보라

저 못 견디게 짙푸른

산하를 떨구고

 

힘주어

네 발로 허공을 할퀴며

불끈불끈

누런 용이 오른다

 

 

 

 

사춘기

 

 

이 그 쬐그만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지. 장롱 맨 아래 서랍, 순간 그 눈에 스치는 몇 줄기의 빛. 마침내 은 훔치고 나는 감춘다. 구름은 멀리 남쪽에서 오라고 오라고 하지. 푸른 날만 찾아 밟으면 항시 길은 트이고.

 

비가 와도 빗속에서 바람은 휘파람을 불었다. 열 번 죽고 다시 열 번 살아나는 몸. 풀밭에 숨어서 우리는 각각 한 살 더 훔친 나이를 먹고 있었지. 그때 문득 밀어닥친 그 빛의 해안선, 작은 돛을 올리고 일곱 줄 고른 行列들은 어디서 오는가.

 

마지막 타고 있던 갈증 하나가 상반신을 눕힌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음악실 창가에서 뒤척이는 잔디들의 마른 肉聲. 하루에도 몇 번씩 강을 건너도 이제 다시 무지개는 뜨지 않는다. 장미가 피던 자리에서 불은 꺼지고.

 

난생 처음 한 어둠을 사랑하다가, 그날 밤 거기서 나는 보았지. 몇 척의 고깃배에 운반되는 저 달을. 비릿내를 풍기며 그러나 바람은 왜 그리도 많은 가슴이었는지. 뉘우쳐도 뉘우쳐도 제자리걸음으로 우리는 날마다 歸家를 했지.

 

 

 

 

시작메모

 

 

예부터 시수업은 곧 인간수업人間修業이라는 말은 흔히 있어 온 얘기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것은 이미 수양의 한 방법인 것이다. 육체를 초월한 정신의 어느 한 지점에서 그 무엇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행위 말이다.

 

하지만 실은 삼라만상의 운행 이 자체가 바로 시요, 우리는 다만 제각기 다른 그 자기의 눈으로 그것을 보고 느낄 따름이다. 한 송이의 꽃, 강물, 구름, 바람 등등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듣는 행위.

 

그리하여 한 사람의 시인이 백지 위에 무심히 글을 한 줄 썼을 때, 그것은 이미 무심한 행동이 아니다. 그 사람의 내부에 이미 담겨져 있는 그 한 편의 시(느낌)가 다시 백지 위에 조용히 옮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살아 있는 시의 행위는 이미 끝난 뒤의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기서 그 많은 형식을 이야기한다. 기교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 저 자연에 무슨 형식이 있겠는가? 형식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연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시는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한 만큼의 기록이요, 그 인생의 한 표정일 따름이다. 그것이 결코 자연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죽은 시. 여기에 무슨 기교가 따르겠는가. 오히려 그 기교를 버릴 때 그 시는 다시 살아나는 법이다.

 

나무도 그렇다. 산림自然 속에 있을 때가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지, 내 집에 옮겨다 심어 놓으면 그 나무의 빛은 죽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의 모든 형식을 이야기한다. 그 산림 속에 있는 나무를 옮겨 심는 과정에 있어서의. 그래서 또한 시인은 시인 이전에 성스러운 방랑자가 되어야만 한다.

 

 

 

 

**약력:1949년 전북 김제 출생. 1970년 원광대 국문과 재학시절 불교에 입문, 그해 첫시집수덕사의 쇠북소리를 발간하였고, 견성見性을 하였으며, 1984년에는 경허만공혜암 선사로 전해 온 전법게傳法偈를 이어받았음. 석가모니로부터 제78. 1979한국문학1백만원 고료 신인상 당선. 1989문학정신11천만원 고료 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구나의 먼 바다(3),다시 에덴에서,불의 침묵. 시집첫사랑,간월도. 산문집,누가 부처를 보았다 하는가. 덕숭산 수덕사 방장 혜암 선사惠庵禪師의 법어를 편역한 법어집法語集늙은 원숭이등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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