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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신작시/이선형/미래의 유리 진열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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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17회 작성일 16-08-24 10:56

본문

신작시

이선형





미래의 유리 진열장


 

메생이 사러갔더니 점방이 문을 닫았더라

입맛을 접고 노모는 텔레비전을 쩡쩡하게 튼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있다는 말

작년까지는 교회 화장실에 갔는데 요새는 문을 잠가서

이젠 거기 안 가

붕어빵 아줌마와 교회 사이 전봇대가 있다

시간이 지나야 뒤집어지는 빵틀을 엿보며

나는 전선에 참새처럼 머리를 까딱거린다

어떻게 머리부터 먹냐, 잔인하게

입을 먼저 맞추는 거야, 모르면서

콩닥거리며 장단을 맞추는 건 여전하지만

낮으로도 유리창에 노란 전구알이 줄줄이 쏘아보는

까페 루시 앞은 가기 싫다

거기 실내는 너무 다른 나라 풍이고 탁자 다리는 너무 높다

그날도 레모네이드가 뜨겁고 달아서

한기와 땀이 동시에 솟았다

바위산 가로막는 사람을 둘러갈 수 없어서

탁자를 앞에 두고 말을 많이 했다 나도 모를

갇혀있던 말이 끈적이며 땀처럼 올라왔다

눈 오는 밤에 건초를 먹는 말에게

우걱우걱 말을 털어놓은 늙은 마부도 그랬을까

듣는 사람은 내내 없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있는데 나는 까페 루시 앞길에 오면

유리창이 깨져 깔린 것처럼 꼭, 돌아가게 된다

가다가 모퉁이에서, 빛나는 때를 맞은 호랑가시나무를 본다

빨간 열매가 넘쳐나 이걸 어쩌나,

헤아릴 수 없는 팔로 말하는 나무를

초라한 한 사람이 서서 미래의 유리 진열장을 구경한다




 

돌이 글자가 되기까지


 

그의 얼굴은 불로 그슬리고 빗방울에 두들겨 맞아 한쪽이 내려앉은 누각이었어요. 동생들은 몇인가요? 할 말을 찾다가 내가 쉬운 걸 물었지만, 처음엔 귀를 잃어버린 듯 했고 나중엔 입이 베인 듯 했지요. 짓눌린 살갗은 그의 것이라기보다 고통의 것이었어요. 그건 파국을 피하고 있던 내 얼굴이기도 했기에 밤에 누워 종의 추처럼 뒤척입니다. 다리를 건너던 개가 물에 얼비친 저를 보고 짖는 것처럼.

 

제 몸을 추로 만들어 종을 치던 까치들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태워진 것들은 가벼워졌을까요?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간 그 사람은 이윽고 벗어나겠지요? 자지 못하고 밤에 짓는 것들은 다 헛생각이지요. 돌이 깨지도록 견디는 것 밖에는, 하지만 그 속에 있지 않겠다고, 이번에는 돌을 던지겠다고 나는 걸어요. 말을 글로 씁니다. 글자 속에 얼굴도 보이지 않는 누가 내 말을, 사방 길이 막혀 갈 데 없던 말을 누가 듣습니다.

 

여기를 빠져나가 마침내는, 살아본 적 없는 얇디얇은 종이가 될 겁니다. 까막까막한 글자들이 땡볕에 비를 쳐다보는 고구마 줄거리처럼 고랑을 지어 있는,   





**약력:1994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밤과 고양이와 벚나무,나는 너를 닮고가 있다.

      백신애창작기금 수혜, <부산작가회의>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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