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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신작시/조재형/경작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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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조재형
경작
1.
나는 땅
신에게 편입된 면적이다
햇빛과 바람과 비를 분배하여
나를 경작한다
그가 거두려는 품종은 사랑이다
허나 내 토질은 척박하여
혀를 차게 하는 흉작의 반복이다
급기야 거래 시장에 내놓을 만큼
묵정밭이 되었다 나는
고랑을 타는데 걸림돌인
죄와 벌이라는 돌멩이가 수북한 탓이다
오랫동안 임자는 나타나지 않고
이따금 고독한 바람이나 둘러보다 가곤 했다
2.
당신은 흙이다
신에게 싹싹 빌어 얻은 한뼘 대토다
그리움을 씨앗으로
묵은 꿈을 일구어 보려는 것이다
당신을 수줍게 태워 보내는 몇 쌍의 미소
눈물 몇 동이와 재잘거리는 잔소리 몇 꾸러미
이런 퇴비들이, 다 기름진 거름이다
그것들을 눈과 귀에 담아 두었다가
내 안 구석구석 살포를 하고
나는 시방 추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3.
신에게는 흉작을 봉헌하면서
당신에게선 풍작을 기다리는
이모작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나는 땅이었고, 한편 농사꾼이다
나무
지구에 발목 잡혀
앞으로도 옆으로도
갈 수 없는 나무
하늘을 향해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꼿꼿한 위의威儀를 지키며
허공의 중턱을 고수하는
그들의 보법
제 몸을 깎아
책이 되어서도
자신을 열람할 수 없으니
스스로 붓이 되어
바람의 속내를 필사하는가
좌로 우로
획을 그으며
쓰다 버린 파지들
**약력:2011년「시문학」등단,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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