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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책 크리틱/김영덕/박제된 매스큘린의 찬란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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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75회 작성일 16-08-30 14:05

본문

책 크리틱

김영덕

 

 

 

 

박제된 매스큘린의 찬란한 귀환

ㅡ박일 시집『바람의 심장』,우동식 시집『바람평설』

 

 

 

 

혀 짧은 소리에 턱을 떨며 부르는 독특한 창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 가수 현인이 부른 노래 가운데 서울의 거리는 태양의 거리/태양의 거리에는 희망이 솟네로 시작되는 대중가요가 있다. 그 시대 유행가로서는 드물게 행진곡풍의 경쾌한 이 노래는 유호가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했다. 노랫말 중간쯤 타이프 소리로 해가 저무는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사실 개인용 컴퓨터와 기업 내부전산망인 인트라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관공서나 일반 회사의 사무실에서 타자기는 다이얼식 탁상용 전화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사무용품이었다. 그 당시 임원 여비서는 보통 타이피스트가 겸하고 있었으며, 사무실마다 일반 직원들을 위하여 별도의 타이피스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내외적으로 거의 모든 공문은 손으로 써서 기안하되 결재를 받으면 타이핑하여 주고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자기가 보급되기 전에는 손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을 필경사로 채용하여 운용하기도 했다. 한편, 타이프라이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90년대 중반까지도 타자기에 컴퓨터 화면 같은 작은 창이 장착된 진화된 전동타자기가 사무실 한 구석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메모리 기능에 자동수정기능, 오타방지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서 쉽게 용도를 폐기하기에는 아까운 타자기만의 장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결국 타자기는 PC와의 생존경쟁에서 패배하여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진화론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자연선택에 의해 소위 적합도가 낮은 특성을 가진 개체로 밀려나면서 멸종된 것이다. 그 타자기를 다루던 타이피스트도 이제는 사라진 대표적 직업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 시대 서울 시내는 물론, 지방의 큰 도시에도 유명 타자학원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매년 수많은 젊은 여성 타이피스트들이 교육을 받고 관공서나 학교, 일반 기업체로 취업을 했다. 사무실에서는 하루 일과중 생산된 문서들을 타이핑할 때 나는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와 함께 오후의 일상이 되었다. 퇴근 무렵이면 명절을 앞두고 가래떡 만들려고 줄 서 있는 시골의 떡 방앗간처럼 타이핑을 대기하는 서류들이 밀려있기 일쑤였으며 이 과정에서 보통 서류의 기안자인 젊은 총각 사원들과 처녀 타이피스트들 사이에 연분이 나기도 했다. 오랜 농경사회를 거쳐 이른바 산업사회였던 그 시절까지도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거의 뚜렷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게 옳다 그르다는 차원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남자 간호사, 여자 사관생도가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까지도 여성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엊그제 뉴스에서 내년부터는 우리나라 국가직 여성공무원 수가 남성을 앞지르게 된다고 하니, 남녀를 구분함에 있어서 이제 생물학적인 차이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머릿속에는 아직 남녀 간 역할 분담에 대한 관념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데, 그것은 까마득한 원시 수렵채집시대부터 줄곧 형성되어 온 역사적 유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제는 박제되어버린 육식동물적인 남성 체취에 대한 일종의 향수와 함께 드넓은 초원을 내려다보며 포효하는 숫사자의 아우라가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갈수록 초식동물화되고 여성화되어 가는 남성성masculine의 위기 세태를 탄식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보화사회로 이행되면서 빠르게 퇴화되어 가는 남성다움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의 선이 굵은 근육질의 원시적 남성 에너지와 마초 기질에 대한 로망을 일깨우는 시인이 등장했다. 이번에 리토피아를 통하여 시집 바람 평설을 낸 우동식 시인이다.

 

바람의 건각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

바람의 잔치가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수평선을 달려온 바람

백 일흔 두 개쯤의 산모퉁이를 돌고 왔을지도 모를

숨 가득 헐떡거리는 바람

바람 속에는 저마다 색깔과 맛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한다

바람은 때로

마스트의 날개를

펼쳐야 할 때와 접어야 할 때를 예보하는

생의 나침판이다

바람 속에는 남자들의 욕망과 세포가

자리 잡고 있다

바람피우기 좋은 날을 택하여

남자들은 바람을 향하여 문자를 날리기도

바람에게 호되게 딱지를 맞기도 한다

바람은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바람의 레이스를 위하여 경기장의 스탠드 가득

관중들을 앉혀놓는다

바람의 테크닉, 부드러운 활공의 때를 맞추어

환호작약으로 피어오르는

꽃잎들의 문이 열리면

어디선가 근육질의 바다 위로

바람이 날아오른다

 

-바람 평설評說전문

 

시 첫머리에서 우동식은 TV로 중계되는 육상경기 외에는 박제되어 있던 바람의 건각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다고 했다. 승리를 포효하며 결연한 표정으로 트랙의 출발선에 모여든 탄탄한 다리 근육을 자랑하는 육상선수들을 보며 관중들도 덩달아 흥분한다. ‘튼튼하여 잘 걷거나 뛰는 다리를 의미하는 건각은 이제 올림픽에서나 필요한 신체적 요건으로 퇴화되었지만, 사실 오랫동안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신체적 기능이었다. 맹수로부터 도망쳐 생존을 도모하는데 건각이 필요했으며, 먹잇감을 잡아 가족을 부양하는데도 건각은 필요했다.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은 현생 인류는 건각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 시인은 건각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황소도 한 방에 때려잡는 무쇠주먹일 수도 있으며 박치기 고수의 돌망치 같은 이마일수도 있고 역도선수의 우람한 어깨일 수도 있다. 레슬링 선수의 훈련으로 닳고 닳아 쪼그라든 귓바퀴와 두터운 목덜미일 수도 있다. ‘백 일흔 두 개쯤의 산모퉁이를 돌고 왔을지도 모를/숨 가득 헐떡거리는 바람이라는 대목에서는 독특한 주법 묘사와 함께 강인한 남성적 패기와 지구력을 잘 표현했다. 시인은 또 환호작약으로 피어오르는/꽃잎들의 문이 열리면/어디선가 근육질의 바다 위로/바람이 날아오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여성과 합일하는 출중한 남자의 원초적이며 에로틱한 성적 에너지의 메타포다. 여기서 더 나가면 강우식 시인의 경지다. 강시인의 연작 장시 미추픽추‘ 11장과 12장을 보자.

 

거대한 선인장이 통째로 뽑히는회오리바람이었다.촘촘 가시가 돋아 뽑히지 않을선인장도 쓰러지는 바람이었다.돌아버릴 것 같은 돌개바람이었다.입 밖에 내기가 무섭고 두렵지만믿었던 하늘이 무너지고 다시 가슴에마추픽추의 거대한 산을 신전으로 세우는거역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중략)닫힌 문을 박살내 듯 봄이 터졌다.산을 흔들어 모든 미물들을 깨우는봄 우레도 들렸다.뱀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린다.봄이 깬다. 안데스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도꿈틀꿈틀 흐르고 모든 사물들을 몸을 부풀러초록빛 같은 사랑을 틔우려 몸살을 한다.깨어난 사랑이 벌거숭이로 덩실덩실 탈춤을 춘다.율동이다. 잉카의 남자들은 페루드란스였다.뒤에서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여자에 밀착하고 돌기둥을 박았다.마주보는 충돌이 아니라일직선으로 같이 흘러가는 물결이었다.짐승 같은 원시본능이 춤이 됐다.사랑하는데 얼굴을 모르면 어떠냐,얼굴을 보면서부터 죄가 생긴다.사랑은 탈이다.. (중략) 잉카의 남자들은 페루드란스였다/뒤에서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여자에 밀착하고 돌기둥을 박았다/마주보는 충돌이 아니라/일직선으로 같이 흘러가는 물결이었다.’ 같은 소름 돋는 표현이 있다. 이것은 매스큘린의 억제되었던 성욕이 봇물 터지듯 일시에 해소됨으로써 욕망이 궁극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묘사한다. 거역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을 휩쓸어 도도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 놓고 마침내 질서정연한 새로운 우주 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압도적 남성의 힘을 시인은 그린 것이다. 우동식은 또 바람 속에는 남자들의 욕망과 세포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함으로써 바람과 남자의 욕망을 등식화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바람을 향하여 문자를 날리기도/바람에게 호되게 딱지를 맞기도 한다고 함으로써 바람 속에서 남녀의 이끌림도 노래했다. 시인은 바람을 향하여 문자를 날리기도라고 했는데, ’바람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기도라고 써도 될 것이다. 입으로만 부는 소극적 휘파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오케이사인을 만들어 입에 넣고 힘껏 부는 그 야성적 휘파람 말이다. 문자를 날리는 것 보다 휘파람을 부는 게 더 남자다울 수 있다. 옛날 시골 장터에서 모처럼 콩클대회라도 열리는 날이면 여기저기 청년들의 휘파람 소리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청년들 휘파람 희야까시에 동네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고는 했는데, 그 휘파람소리에서 수컷 냄새가 물씬 풍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돌산도 끝닿는 곳으로 눈길을 풀어놓으면

은적암*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얼핏 둘러봐도 깊은 골짜기 은둔한 암자일 거라는 생각이

후박나무, 동백나무, 팽나무 울울창창한 숲으로 번진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밖이 다 드러나 보이는 뜰 안

석류나무 한 그루,

입술 부르튼 목탁이 주렁주렁 열려

그 해탈한 웃음소리에

잎들이 쫑긋쫑긋 귀를 세운다

하안거 중인 고승의 염불 소리 알알로 맺혀

톡 톡 톡 두들기면

시큼 달콤한 경전의 말씀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사원 앞에서 동박새들이 예불을 한다

다람쥐 한 마리 나뭇가지 위에서 경배의 자세로 멈추면

풀들도 잠시 그 쪽을 향하여 몸을 누인다.

 

 

-「석류나무 사원전문

 

 

우동식은 가을날의 고요하고 적막한 산사 풍경을 한 폭의 맑은 수채화로 그려냈다. ‘석류나무 한 그루,/입술 부르튼 목탁이 주렁주렁 열려/그 해탈한 웃음소리에/잎들이 쫑긋쫑긋 귀를 세운다/하안거 중인 고승의 염불소리 알알로 맺혀/톡 톡 톡 두들기면/시큼 달콤한 경전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절묘함으로 독자들에게 독특한 시적 감흥을 준다. 특히, 석류를 입술 부르튼 목탁이라고 한 비유가 재미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향토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게 느껴진다.

 

 

 

2

인천의 관록 있는 중견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박일의 바람의 심장이다.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탐색과 존재의 자각에 따른 내용과 형식에 대한 회의를 남성적 감성으로 끌어올린 장중한 시어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시인이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인천에 대한 뜨거운 향토애도 깊게 묻어난다.

자네, 그림자를 남기고 싶거든

화수포구 골 깊은 갯골로 오게

갈매기들이 하얗게 몸을 털다가

안개로 일어서는

갯골로 오게

사람들의 바다가 그림자를 만드는 그곳에는

이마에 소금기가 앉은 어부들과

아낙들이 돌부처가 되어

삶을 깁고 있네

자네, 화수포구 골 깊은 갯골의

갯골 사이에서

손을 흔들어 보게

살아 있는 자, 그대의 목숨이 목숨인가

숨을 쉬는 자, 그대의 밤이 밤인가

뜨거운 심장은 보이지 않네

보이지 않는 손들이 손을

흔드는 세상이기에

자네, 빨리 갯골로 와 보게

햇살의 주검이 바다로 가라앉는

눈물을 보게

 

-화수포구에서전문

 

인천 화수동은 화도리수유리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 화수동에 있는 화수포구는 갯벌을 매립해 만든 공장 굴뚝과 담장,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작은 포구이다. 한적한 어촌과 퇴색한 도시 변두리의 골목길 분위기를 함께 담고 있는 곳이다. 개화기 인천의 증인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개화의 혜택과는 거리가 먼 낙후된 어촌이다. 자네는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일 때, 그 사람을 높여 가리키는 말이다. 대체로 남자들 사이의 호칭이다. 이 시의 화자speaker자네, 그림자를 남기고 싶거든/화수포구 골 깊은 갯골로 오게라고 말문을 열었다. 존재의 흔적을 보고 싶으면 햇살의 주검이 바다로 가라앉는해 질 무렵의 화수포구로 오라는 얘기일 것이다. ’사람들의 바다가 그림자를 만드는 그곳에는활기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오죽하면 이마에 소금기가 앉은 어부들과/아낙들이 돌부처가 되어낡은 어망을 손질하며 남루한 삶을 깁고 있겠는가. ’뜨거운 심장은 보이지 않는 삶과 죽음의 황량한 경계에서 말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만큼 뒤에는

아우성치는 조개와 조그만 어린 게들을

바구니에 이고 가는 아낙네들이

보였다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만큼 뒤에는

갈매기들이 가로등 위에서 날개를 펼치는 것이

보였다

오늘도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만큼 뒤에는

갯벌을 생매장한 공동묘지 터가 보이고

비석(碑石)처럼 늘어선 고층빌딩만

보인다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만큼 뒤에는 늘

목이 쉰 안개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울부짖는 풍경만

보인다

 

-「연수구 송도동전문

 

화수포구와는 대조적으로 송도는 요즘 한창 뜨는 인천에서 제일가는 신도시다. 바다를 메꾸어 만든 오롯이 인공 도시다. 인천의 구도심에서 송도로 가려면 해안도로를 따라 가야 한다. 그런데 그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피안의 송도신도시는 사실 멋지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 도시가 미국 뉴저지에서 허드슨강 건너로 보이는 뉴욕의 맨해튼을 거의 빼닮았다. 그러나 불야성 같은 스카이스크래퍼(마천루)의 도시인 송도가 시인의 눈에는 다만 적막한 공동묘지, 수많은 생명체가 억울하게 매장 당한 공동묘지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솟은 빌딩들은 아우성치는 조개와 어린 게들과 해초들이 생매장된 공동묘지의 비석이라고 했다. 문명civilization의 역설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배다리 좁다란 골목길

모퉁이 책방에는

그녀가 읽어주던

시집이 한 권 꽂혀 있습니다

 

동인천역을 나오다가 혹시

그녀가 좁다란 골목길 그

옆길로 와서 시를 읽고 있지 않을까

않을까 문득

 

배다리 좁다란 골목길

책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가지런히 꽂힌 책들 사이로

그 옛날

그녀가 남긴 목소리만

시를 읽고 있습니다

 

-배다리 책방 안에는전문

 

옛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이 시는 인천 사람들에게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낯익다. 사실 배다리와 싸리재의 좁다란 골목길은 과거 인천 젊은이들의 문화적 성지였다. 그 골목길을 따라 수많은 서점들이 잇달아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학창시절 침을 꼴깍 삼키며, 숨죽이고 보았던 추억의 명화들을 상영하던 개봉관 문화극장미림극장, ’오성극장‘, ’애관극장도 반경 1킬로미터 내외에 있었다. 가진 것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그 시절, 극장은 세계를 향한 거의 유일한 창이었다. ‘배다리 좁다란 골목길/책방 문을/열고/들여다보면그녀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시를 읽어주며 남긴 고운 목소리와 그 달콤하고 가슴 설레던 순간은 박제되어 지금도 우리 기억 속에 명징하게 남아있다

 

 

**약력: 문학평론가. 2014년《 리토피아 》로 등단. 아라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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