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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책 크리틱/이병철/소년이 쓰는 불혹不惑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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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크리틱
이병철
소년이 쓰는 불혹不惑의 시
ㅡ안주철『다음 생에 할 일들』, 김중일『내가 살아갈 사람』
불혹(不惑)은 나이 마흔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것에도 쉽게 미혹되지 않는 나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자기중심을 지킬 줄 아는 나이를 뜻한다. 남자에게 있어서 이 ‘불혹’은 하나의 훈장인 동시에 생의 중간 성적표,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등짐의 무게까지를 모두 아우른다. 마흔은 지금껏 살아온 삶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좌우하는 분기점이다. 가장이 되는 나이, 많은 것들과 이별하는 나이,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더 많아지는 나이, 척박하고 엄혹한 생의 정글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나이다. 마흔이 되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포기하는 것들이 생기고, 어떤 꿈들은 이번 생에서는 도무지 이룰 수 없어 다음 생을 기약하게 된다.
나이 마흔이 되면 온갖 것들로부터 유혹과 미혹을 당한다. 신념이나 꿈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붙잡고 있는 게 비경제적인 것일수록 세상의 시험과 유혹은 더 크게 몰려온다. 그래서 마흔이 되거나 마흔을 앞둔 남자들은 여러 비현실적 이상들을 포기하고 금방 기성사회의 어른이 된다.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실용적으로 행동한다. 책임이 많아질수록 희생도 많아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 어떤 능력이든 발휘해서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해보여야만 한다.
공교롭게도 마흔이 된, 마흔을 앞둔 두 남자의 시집을 함께 읽었다. 첫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을 펴낸 안주철은 1975년생으로 올해 만 나이 마흔이다. 세 번째 시집 『내가 살아갈 사람』을 발표한 김중일은 1977년생으로 내년이면 우리 나이 마흔이다. 이 두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목에 “다음 생에 할”과 “내가 살아갈”이라는 미래시제형 관형어를 쓰고 있다. 시라는 자기분야에서 나름의 일가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은 채 공중에 떠 있기엔 사회의 중력이 너무 강한 탓일까. 두 시인은 지금껏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살아갈 삶, 심지어는 다음 생을 기약하고 있다. 지금껏 이루지 못한 것들, 이별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앞으로 이룰 것들, 만나게 될 것들을 향한 기대를 동시에 노래하고 있다. 어린 소년처럼 세상에서 갈팡질팡하며 흔들리는 양상을 굳건한 시의 언어로 그려내는데, 사람은 미혹되어도 시인은 불혹이다. 마흔을 받아들이는 두 시인의 태도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안주철에게는 마흔이라는 생의 비극적 풍경을 향해 바싹 엎드려 포복해가는 페이소스와 순정이 있고, 김중일에게는 마흔이라는 시간의 중력을 유예시키는 천진함이 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게 시들어버린 가을은 지나갔지만
나는 나에게 머무를 수 없어 자꾸 슬프다”
―안주철,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이 생각하는 마흔은 루틴한 일상들이 반복되는 “묵은 나이”(「혀로 지은 집」)이자 더 이상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죽은 나이”(「모래로 덮은 말」)다. 또 쉬어갈 틈 하나 없이 “빽빽한 나이”(「품위 없는 사랑」)이면서 언제 쫓겨나거나 주저앉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나이”(「일 미터」)다. 마흔이라는 생을 견디는 안주철의 시에는 쓸쓸함과 비애, 페이소스가 도처에 가득하다. 마흔이 되니 “내가 태어난 고향이 나보다 먼저 죽어”(「함부르크」)버렸다. 힘겨울 때면 잠시 돌아가 쉬던 마음의 안식처가 사라진 것이다. 부모와의 이별도 겪어야 한다. “누구에게 엄마라고 불러야 하지?”(「겨울이 내 살을 만진다」)라는 자문에는 부모의 부재 앞에 고아가 되어버린 다 큰 남자의 슬픔이 묻어있다. “다 모였는데 내가 없다”(「버릇없는 설계도」)는 외로움과 “암컷이 덜어줄 수 있는 문제가 더이상 아니”(「썩은 고기」)라는 쓸쓸함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아서 “세상에 자신의 발자국을 절반도 남기지 않았”(「혀로 지은 집」)음을 후회하고, 꿈에서나마 ‘내 집’을 소망하지만 “꿈을 방으로 바꾸기 위해 꿈속에서 문을 만들자마자 아침이 도착하”(「마루」)는 허탈감을 매일 맛볼 뿐이다. ‘나’라는 개인이 지워지고 ‘가장’이라는 역할만 부각될 때, “희박하지만 명료한 내가 생활 속에 한방울 맺혀 있”(「희미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디로도 갈 수 없이 늘 ‘생활 속’에만 갇혀 있는 고립감과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고독감에 “수음”(「형은 어느날 누나가 되어 돌아왔다」)한다. “성기를 만지면 다른 나라에 여행 온 기분”(「버릇없는 설계도」)이나마 잠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흔의 시인은 “등이 갈라지면서 또 하나의 내가 기어나와 갈라진 등을 두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것 같아”(「노인이 되는 방법」) 스스로를 자폐와 고립 속으로 자꾸 침잠시켜 간다.
그러나 안주철은 나이 마흔의 고독감과 무력감에 그저 함몰되지만은 않는다.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밥 먹는 풍경」)리는, 되는 일 하나 없는 날들이지만 “오늘만은 쓸쓸함에 기대거나 슬픔에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봄밤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몸은 다 녹아내려 질척거리”(「깨진 유리」)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찌그러진 바퀴를 펜치로 펴”(「양계장」)내는 노동에 최선을 다 한다. “아내는 자잘한 꿈이 많아 손이 많이 간다”(「꿈을 지우다」)고 푸념하지만, 그의 순정은 지극하기만 하다. 현실의 궁핍에 괴로워하면서도 “속된 얘기는 하지 말자고 정신까지 비틀거리며 결심”(「삼류인생」)할 수 있는 것도 이 순정 덕분이다. 안주철의 순박하고 뜨거운 애정은 아내와 아이, 자신처럼 낮게 엎드린 세상의 모든 풍경들, 그리고 시를 향해 왈칵 엎질러져 있다. 시인은 ‘한근’, ‘몇 병’, ‘몇 근’, ‘한 박스’, ‘두병’, ‘한줌’ 등 삶의 단위로 계량해낸 감동을 우리에게 내어민다.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 「다음 생에 할 일들」 전문
위 시에서 ‘나’는 ‘돈’도 ‘집’도 없는 빈곤한 가장이다. 사회적 통념의 관점으로 볼 때 ‘나’의 ‘이번 생’은 실패작이다. ‘나’도 그것을 잘 알기에 ‘아내’에게 자꾸만 ‘다음 생’을 이야기한다. 그런 ‘나’의 시답잖은 소리에 ‘아내’는 “죽을래?”식의 협박조 농담으로 대꾸한다. 이윽고 차려진 밥상 앞에서 ‘나’는 ‘아이’에게마저 혼난다. 아이에게 혼나는 일이 익숙해서 억울하지도 않다. 이 소박하고 살가운 밥상을 이룬 ‘나’의 ‘이번 생’을 과연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겐 ‘다음 생’마저 함께 하자는 무모한 순정 앞에 미소지어주는 아내가 있다. 이 투닥대는 밥상 풍경 앞에 우리는 “눈물을 문지른 손등같이 웃으며” 따뜻해진다. 안주철의 시가 감동적인 것은 구체적 체험의 진정성을 담보한 까닭이다.
“나는 당신의 손을 모아 밤마다 기도할 거예요”
―김중일, 『내가 살아갈 사람』
김중일의 마흔 무렵은 안주철의 마흔과는 자못 다르다. 안주철이 삶이라는 바닥에 바싹 엎드려 그 낮은 높이에 존재하는 슬픔과 고독, 삶의 비애를 순박하게 껴안는다면, 김중일은 감각이라는 공중에 몸을 띄운 채 이 세계의 비극적 풍경들,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생의 기억들을 천진한 음성으로 발화한다. 김중일 역시 마흔이라는 물리적 나이를 의식한다. “어쩌다 이제 여긴 여름도 이름도 없는 숲 속이야”(「삼십대」)라든가 “마침내 나는 오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후를 가졌다”(「미안의 안녕」), "나는 장미처럼 새빨간 석양을 온통 주름투성이 얼굴로 모두 받으며 서 있다. 주름이 얼마나 깊어야 꽃잎이 되는가”(「장미가 지자 장맛비가」)와 같은 진술에서는 인생에서 매우 상징적인, 또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 ‘마흔’을 향해가는 한 남자의 고독과 쓸쓸함이 짙게 배어있다.
그러나 김중일은 특유의 천진함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마흔 살이라는 물리적 나이를 유예시킨다. 그에게는 소년의 것이라고 할 만한 활달한 상상력과 감수성, 뜨겁고 순수한 정념이 있다. 그가 “옛날에 밤이면 밤마다 하늘에서 새들이 눈물처럼 소리도 없이 떨어져내렸다”(「밤과 하늘」)고 상상할 때, 또는 “나는 당신의 손을 모아 밤마다 기도할 거예요”(「당신의 벼락」)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한 사람의 어른 시인으로부터 눈이 맑고 손가락이 고운 소년이 걸어 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나이 마흔을 앞둔 김중일이 소년이 되는 방식은 다름 아닌 ‘질문하기’이다. 불혹은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나이, 다 알기에 미혹됨이 없는 나이다. 그런데 시인은 질문하기를 통해 모르는 이의 자리로 돌아간다.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경이롭게 바라볼 수 있는 소년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이를테면 그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린다면 바다의 수위는 얼마나 올라갈까”(「농담」)라든가 “전세계의 사람들이 동시에 물구나무서서 땅을 움켜쥔다면 지구를 한주먹의 작은 공처럼 뭉칠 수 있을까”(「중력이라는 아주 작은 공」)와 같은 엉뚱한 질문들을 던질 때, 바다와 지구에 씌워져 있던 상투적 관념들이 제거되고 태초의 순전한 자연, 어린 아이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무한한 우주가 회복된다. 시인의 질문을 받아든 우리는 관성과 인습에 젖은 사고에서 잠시 벗어나 눈물과 바다의 상관관계에 대해, 중력을 극복하는 물구나무서기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한번쯤 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이와 자정의 백사장에 앉아, 호주머니 속의 몽당연필을 꺼내 밤하늘에 빼곡히 찍힌 별들을 이어 기록에 없는 별자리를 그렸다. 밤새 그 별자리를 모조리 잇자 검게 빛나는 그물 한벌이 되었고, 그물이 걷잡을 새 없이 우리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코앞에서 긴 지느러미를 흔들며 도망가는 어제와 그을린 낮달과 놓친 실타래처럼 뒤엉킨 잿빛 해무와 갈라진 홍해를 덮고 잠든 아침과 초록의 갯바람만 겨우 빠져나가던 그물. 우리는 그물을 둘러메고 물고기 잡으러 갔다. 달밤에 저마다 그림자를 작은 보트처럼 옆구리에 끼고 난바다로 나갔다. 이제야 고백건대 지난 계절 나는 지독히 사랑했던 제이의 얼굴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몸을 내버린 마음의 투신이었고 제이는 무방비였다. 제이의 얼굴은 깊었고 나는 내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제이는 나를 이번 생으로부터 안전히 건지기 위해 평생 제 얼굴에 그물을 드리웠다. 그늘을 드리웠다. 나를 보며 울고 웃고, 웃고 우는 순간 얼굴 위로 팽팽히 그물이 끌어당겨졌다. 무수한 표정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갇혀 얼굴 속으로 자맥질했다. 벗어나지 못했다. 결코 제이는 나를 산 채로 얼굴 밖으로 끌어 올리지 못했다. 밤새 같이 울던 제이와 이별로 가던 날. 모래톱처럼 깎인 제이의 얼굴, 턱선 밖으로 파도의 주름에 떠밀린 죽은 물고기처럼 나는 쓸려나왔다. 이제, 제이의 얼굴 속에 내 물고기는 살지 않고 이제, 제이의 얼굴 위로 성긴 주름의 그물이 허물처럼 떠올랐다.
― 「제이와 함께 한 이야기」 부분
그러나 김중일의 ‘소년됨’은 그가 엉뚱한 호기심으로 이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질 때보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할 때, “처음부터 네 몫이었던 나의 절반을 그저 은어 한마리에 불과한 네게 돌려주겠다”(「나의 절반」)고 선언할 때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소년으로서 지닌 모든 찬란한 것들, 말하자면 상상력과 감수성, 지극한 순정 같은 것들을 전부 그러모아 개인적 생의 어느 한 시절을 보편성 있게 그려낼 때 우리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상처 입기 쉬운 한 소년으로부터 오래토록 색이 바라거나 형태가 변하지 않을 다이아몬드를 선물 받는다. 그 다이아몬드는 바로 한편의 좋은 시가 지닌 감동이다. “몽당연필을 꺼내 밤하늘에 빼곡히 찍힌 별들을 이어 기록에 없는 별자리를 그리”고, 별자리가 그물이 되어 “제이의 얼굴”에 이별의 징후로 드리워지고, 제이의 얼굴에서 “무수한 표정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갇혀 얼굴 속으로 자맥질하”는 이 아름다운 이미지는 상상력과 감수성, 그리고 순수한 정념으로 이뤄낸 시다운 시다. 어떤 경향이나 유행에 미혹되지 않고 자기세계를 견고하게 지켜낸 불혹의 시다.
**약력:2014년 《시인수첩》 시 등단. 2014년 《작가세계》 평론 등단.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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