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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미니서사/김혜정/개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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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53회 작성일 16-09-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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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개들의 풍경

 

 

창밖에는 비가 뿌리고 이따금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는 어젯밤부터 금식을 하고 아침에 PET을 찍고 나니 온몸이 축축 늘어졌다. 게다가 병실의 탁한 공기가 숨통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옆 침실 환자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창문을 열었다. 공기는 눅눅할 뿐 신선하지 않았다.

그는 TV를 향해 눈을 돌렸다. 예능프로그램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밀히 말하면 암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프로를 보며 낄낄댔다. 아무 생각 없이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정도면 족했다. 인생이 특별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원 후에는 그런 프로에 눈길이 가지 않았다. 밤낮없이 시시닥거리다니, 저렇게 할 일이 없나. 천금 같은 시간인데 좀 더 보람 있는 일에 쓰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자괴감을 느꼈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이라더니 하루아침에 말기암환가가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은 낮이 밤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밤이 되어서도 그는 계속 뒤척일 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마와 관자놀이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체념의 그림자가 거무스름한 얼굴에 깃들었다. 그는 발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대고 침대에서 일어다가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았다. 허리가 접히면서 몸이 푹 꺾였다. 그는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인생이야!

그는 겨우 일어나 병실 밖으로 나왔다. 자유란 찾는 자에게 찾아온다더니 맞군, 하면서 그는 병원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아무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무슨 소리가 나서 멈춰 섰다.

 미터쯤 앞에서 개들이 교미를 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낮도 아닌 밤에, 비까지 푸슬푸슬 오는데 저 야단인가. 하지만 그는 그 광경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워 보였다. 단 한번만이라도 개들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맥이 빠졌다.

순간, 수캐가 몸을 빼지 못해 낑낑거리자 암캐가 수캐의 다리를 물었다. 그런데 암캐가 아무리 물어도 수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먼 데 눈길을 주고 있었다. 더 없이 황홀한 눈빛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개보다 못한 인생이군!

 

 

**약력: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남자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독립명랑소녀』『영혼 박물관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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