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0호/특집I/내가 기억하는 시 한 편/김중일/다시 맞는 '삼십세'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482회 작성일 16-09-07 10:54

본문

특집I

내가 기억하는 시 한 편

김중일

 

 

 

 

다시 맞는 '삼십세'에 대하여

                          ㅡ최승자, 「삼십세」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삼십세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청춘의 국경처럼 생각 된다. 또한 스무살청춘을 비로소 발견하고 맞이하게 되는 시절이다. 스무살 때 나는 최승자의 시 삼십세를 처음 읽었다. 아직 어떻게 살아야할지 도무지 결정 하지 못했을 때였다. 내 나이 스물이던 그 해는 법정에 선 전두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던 해였다. 또한 그 해는 강릉에 잠수함이 침투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해였다. 스물을 목전에 두었던 열아홉이었던 이전 해에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으며, 또 그 전년도 가을에는 등교 시간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또래 무학여고 학생 7명을 포함한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열여덟, 열아홉 매년 대형 참사가 일어났고, 그 시절을 통과하자 나는 스물이 되어 있었다. 성인인 것도 성인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청춘인 것도 청춘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청춘은 상처의 리트머스종이와도 같다. 내 청춘을 물들일 변변한 상처가 없었으므로 청춘이 아니었고 어른도 아니었다. 이십대는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오고 있는 상처를 마중하는 시절이었다.

 

두툼한 열역학이론 전공서에 이마를 대고 강의 중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구내식당에서 돈까스를 먹고 줄담배를 피우고 더러 낮술을 마시며 목적 없이 학생회관을 전전하다가 우연찮게 교내 문학동호회에 발 들이게 되었다. 특별히 다른 관심사도 없었기도 해서지만, 문학동호회에서 운영하는 독서토론에 나는 곧잘 참여했다. 부끄럽게도 당시 나로서는 거의 체험해보지 않은 생소한 분야였으므로 그 낯섦에 호응했던 것 같다. 읽어 가야할 책을 빌리려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정작 찾는 책이 아닌 최승자의 시집을 우연히 먼저 꺼내들게 되었다. 최승자를 비롯한 시인들의 이름이 생소할 때였다. 집어든 최승자의 첫시집 이 시대의 사랑을 아무 페이지나 펼치자 우연히도 처음 등장한 시가 삼십세였다. 당시 삼십세는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고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였다. 나는 삼십세라는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더 풍성한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그 자리에서 시집 한권을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아리고 없는 자궁이 얼얼했다. 무엇보다 그날부터 삼십세를 향한 최승자의 저 유명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라는 구절이 내 뇌리에 깊이 각인 되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시절로 가는 터널이 이십대라니, 이미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생의 의미를 좀처럼 찾지 못하던 스무살 보내고 있던 나로서는 당혹감이 꽤 컸다. 또 그만큼의 호기심도 생겼다. 내가 스물일 때 그 머나먼 서른에 대한 아득한불안과 호기심을 안겨준 시가 최승자의 삼십세. 나는 좀 더 단단히 각오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결국에 나는 최승자의 표현대로 루머처럼 이십대를 살다가 겨우겨우 삼십세가 되었을 때, 첫번째 시집의 교정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십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 생의 놀랄만한 단 하나의 반전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시인이 되다니, 더구나 곧 시집을 내다니.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 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이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최승자,삼십세

 

 

2006년 나는 최승자의 시삼십세를 읽었던 스무살 때부터 그토록 상상하던 삼십세가 되었다. 독일월드컵과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열렸으나, 봉준호의 영화 괴물1,300만 관객을 넘겼으나, 내 나이 서른이던 그 해는 내게 뚜렷이 기억되는 어떤 일도 없었다. 다만, 시집으로 묶을 원고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문득 엄습하는 절망감과 부끄러움을 대면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행복도, 최승자의 시에서처럼 차라리 항복이 행복할 정도의 커다란 절망도 없었다. 얼결에 등단한지 오년이 지나고 있었고, 등단 이듬해 발병한 아버지의 병도 호전되고 있었고, 생에 처음 겪은 실연도 이미 두 해나 흘러 무덤덤해졌으며 회사 생활도 삼년차로 접어들어 익숙해져 있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일까 불행한 것일까. 최승자처럼은 아니더라도, 내게 고작 이런 식으로 정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가 온 것인가. 적어도 당시 내게는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할 낭만 정도는 아직 남아 있었다. 내 이십대와 삼십대의 경계는 행복도 불행도 유실된 무중력의 상태였다. 그 무중력 속에는 우주의 암흑물질처럼 출처 없는 불안이 가득 차 있었다. 이십대와는 다른 성분의 불안으로 마음 편히 늙지도 못하는 삼십대였다. 다시 위장에서 암세포가 싹튼아버지는 결국 고인이 되셨고, 벌써 이별한지 두 해나 지났지만 생생불식 그대로인 실연의 흔적이며, 어느새 십년을 훌쩍 넘긴 사무원 생활은 하면 할수록 더 적응되지 않는 무력감이 쌓였다. 그 모든 생채기는 이십대에 비해 잘 아물지 않았다.

 

작년 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도 지구상의 내전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으며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인 아일란 쿠르디도 터키 해변에서 목숨을 잃었다. 십년전에 비해 이 세계에 참혹한 일들이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많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나는 그런 세계와 시간을 뚫고 삼십세가 된지 십년만인 내년 2016년 마흔을 맞게 된다. 사실 그 동안의 내 고통과 상처도 뼈 시리게 아픈 것이었지만, 나를 한 입에 집어 삼키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곧 마흔이 될 나는 놀랍게도 여전히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없는 상태 그대로다. 당황스럽게도 조만간 나는 삼십세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사십세를 맞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에 걸쳐 삼십세를 맞게 될지 모른다. ‘그냥 이렇게 이대로 살 수 있을 것 같고 또는 내일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생각될 때까지, 나는 십년마다 새로운 삼십세를 맞게 될 것 같다.

 

마흔이 되어 또 다시 맞는 삼십세가 기껍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불안이 멈춰지지 않는 것에 대해, 그 청춘의 증세에 대해서 뭐라고 할까. 아직 확답할 수 없다. 다만 오래된 육체에 머무는 청춘은 삼십세 이전의 청춘과는 다르다는 것. 나는 그런 내 청춘을 두고, 망자의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내 곁에 가득하다고 말하겠다. 또한 십년 주기로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묻기 직전 더이상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이 갓 낳아 놓고 간 눈도 못 뜬 어린 것들이 여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내 불안의 부스러기를 받아먹으려 작은 입을 꽃잎처럼 벌리고 있다고 말하겠다.

 

 

**약력: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이 있음.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