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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추모특집/이가림 시인/김영덕/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없어진 있음으로 -이가림 시인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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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279회 작성일 16-08-23 13:46

본문



추모특집

이가림 시인

김영덕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없어진 있음으로  -이가림 시인을 추모하며



 

1

 

어린 날

물수제비뜨기의 가뭇없이 가라앉은

조약돌인 듯

 

후미진 마음의 오두막

홀로 조는

등잔불인 듯

 

캄캄한 밤

으악새 우거진 골에

떨어진

한 조각 운석인 듯

 

모래 이불 밑에

몰래 숨은

한 마리 모래무치인 듯

 

촉촉한 흙에

반쯤 묻힌

보리씨인 듯

 

그렇게

없어진 있음으로

조용히

지워지고 싶어

  

  

- <잊혀질 권리> ‘현대시학’ 20145월호 중



자신의 죽음이라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을 예감한 시인이 병상에서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스마트폰으로 작성했다고 알려진 시다. 시인은 자신을 조약돌’, ‘등잔불’, ‘운석’, ‘모래무치‘, ’보리씨로 비유했다. 매우 서정적인 낱말들이지만, 하나같이 제 잘난 맛에 사는 지구라는 이 행성에서 조촐하여 잘 드러나지 않는 대상들이다. 그런데 독자들은 잊혀질 권리라는 이 시 제목의 작위적 무미건조함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소박한 단아함과 그 간절함에 깊이 매료된다. 시의 각 연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이미지들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소년기와 청년기, 중년기와 장년기의 삶을 절제된 시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소품들이기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 어린 날의 물수제비뜨기 하던 조약돌, 청년기의 자의식과 서정성 충만하던 시절의 아득한 등잔불, 그리고 으악새 우거진 골에 떨어진 운석으로 외로웠던 중년의 삶과 그 시대의 어둠까지 회상한다. 포근하고 아늑한 모래 이불 속의 모래무치와 촉촉한 흙에 반쯤 묻힌 보리씨는 긴 겨울의 강을 건널 채비를 하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보리씨는 겨울을 앞둔 가을에 파종한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이른 봄에 싹을 틔운다. 동토에서 사라진 듯하지만, 흰 눈 속에서도 함초롬히 푸른 생명의 새싹을 대지 위로 밀어 올린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없어진 있음으로/조용히/지워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시인은 우주적 순환의 비밀을 알고 있다. 시인이 새봄에 보리로 다시 태어나는 날 시냇가에서 조약돌을 가지고 물수제비뜨기를 하는 소년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시인은 일찍이 내가 일천 번도 더 입 맞춘 별이 있음을/이 지상의 사람들은 모르리라’(‘유리창에 이마를 대고부분)고 거의 단언했다. 시인은 평소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새는 하늘로 올라가기 위하여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퍼덕임으로써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즐겨 인용하기도 했다

    

이가림 시인의 없어진 있음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존재와 시간에 관한 두 가지 서술을 징발할 수 있다. 하나는 바이블이고 다른 하나는 아르헨티나의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문장이다. 바이블에서 신은 댁은 누구시냐고 묻는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있는 나. 나는 어떤 것과도 다르게 필연적으로, 항구적으로, 실제적으로 존재한다. 시간은 내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시간에서 벗어난 존재다.”(1) 그런데 있는 나를 신God만이 독점해야 할까? 시간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있음을 없어진 것으로 할 수는 없다. 한 번 있음existence은 언제까지나 있는 것이므로 없어진 있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손수 황무지를 개간하여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모국어의 새로운 지평 위에서, 후세 시인과 독자들의 비옥한 문장과 촉촉한 정신 속에서, 가림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운명은 그 허구성 때문에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뒤집을 수 없으며 완강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나는 시간의 산물이다. 시간은 나를 멀리 흘려보내는 강물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강물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나를 산산이 찢어발길 수 있지만, 내 자신이 호랑이이기도 하다. 불은 나를 살라버릴 수 있지만, 내 자신이 불일 수도 있다.”(2)

____________________

* 각주 (1) I am that I am. I exist, as nothing else does necessarily, eternally, really. An existence out of time, with which time has nothing to do.”

(2) “Our destiny is not horrible because it’s unreality; it is horrible because it is irreversible and ironbound. Time is the substance I am made of. Time is a river that carries me away, but I am the river; it is a tiger that mangles me, but I am the tiger; it is a fire that consumes me, but I am the fire.”

 

  이가림 시인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해방공간과 6.25 전쟁을 겪으며 분단되어 섬처럼 된 조국에서 살다가 갔다. 시인은 자신의 어릴 적 애칭이 때국놈이었다고 했다. 이 개인적 경험은 분단 조국의 질곡에서 시인이 자의식을 형성해나가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시 <내 마음의 협궤열차>에서처럼 광활한 만주벌판에서 바람 속에 말달리는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말이다. 바람직한 시인의 자세로 후학들에게 늘 견자가 될 것을 강조했던 시인은 초기의 담백, 수려한 모더니즘 시풍에서부터 차츰 모국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불거지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 오염되어 척박해져가는 세상과의 불화를 그리는 참여시의 경향을 선뜻 드러내기도 했다.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인천에 정착하게 되는 80년대부터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변방의 향토적 삶을 깊이 응시하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조를 노래한 일련의 생태시들도 다수 발표했다. ‘아라문학창간호와의 대담에서 시인은 오늘날 목격하게 되는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의 과잉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획일화됨으로써 고유한 각각의 민족 정체성과 문화전통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의 적정한 균형잡기를 통해 민족 정체성과 인류 보편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라문학창간호 특집으로 실렸던 향토적 삶의 진실을 다룬 시인의 인천 테마시들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장난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떠난다


너의 간이역이

끊어진 철교 그 너머 

아스라한 은하수 기슭에

있다 할지라도

바람 속에 말달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

열띤 기적을

울리고

또 울린다


바다가 노을을 삼키고

노을이 바다를 삼킨

세계의 끝

그 영원 속으로 마구 내달린다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

내 철없는 협궤열차


오늘도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


                   -<내 마음의 협궤열차> 전문




내 마음의 협궤열차에서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으로 시작되는 이 시의 무대는 분명 옛송도역일 것이다. 시인은 섬광 같은 첫 구절로 측백나무를 선택하고, 마지막 행을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난다라고 노래함으로써, 이 시의 비장의 무기이자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구축했다. ‘추억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단어가 아닌, ‘측백나무라는 실재적concrete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을 단숨에 30년 전의 송도역으로 안내한 것이다. 시에서 마지막 행은 사실 조크의 펀치라인이다. ‘장남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 ‘바람 속에 말달리는 마음 어쩌지 못해’, ‘세계의 끝 그 영원 속으로’,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내 협궤열차는 일순 한 량 가득 그리움 싣고 떠나는 것으로 수렴된다.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순수한 영혼의 메타포이며 출발하자마자 돌이킬 수 없는 뻘에 처박히고 마는내 열차는 북방의 드넓은 만주벌판에서 태어난 시인의 분단된 조국 현실에 대한 자의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끊어진 철교는 휴전선 철조망의 확장된 은유이며 아스라한 은하수 기슭에 있너의 간이역은 도달할 수 없는 공간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마지막 행을 통하여 버릴 수 없는 꿈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7,80년대 수도권에서 젊은 날을 보낸 사람들 중,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 보지 않은 이 드물 것이다. 지금 탈 것으로서 그 꼬마열차는 고향을 떠나갔지만,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여전히 존재한다. 수인선 열차의 종착역은 원래 남인천역(수인역)’이었지만, 인천의 도시 팽창으로 폐쇄되고 그 직전 역인 송도가 종점이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인천항 도크공사가 시작된 1973년의 일이다. 고추잠자리 허공을 어지럽게 맴도는 고즈넉한 이른 가을의 어느 주말 오후, 수인선 종착역이자 시발역인 송도역콘크리트 계단을 올라가면 출입구 양쪽으로 측백나무들이 보초를 섰다. 기차가 출발하여 남동역을 지나 소래역을 지나면 소래철교가 나온다. 어선이 드나드는 갯골 위로 교각과 침목, 레일만으로 이루어진 100미터 남짓 철로인데,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 때는 그 위를 걸어서 건너기도 했다. 발아래 아득히 일렁이며 넘실대는 바닷물을 외면해가며 위태롭게 가설된 철로를 건너 월곶의 포도밭으로 가는 길은 당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다. 그 철로는 머뭇거리는 청춘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놓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열아홉 풋사랑의 가교였던 셈이다


   

바르비종 마을의 만종 같은

저녁 종소리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일 때

하루치의 이삭을 주신

모르는 분을 위해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간절함이여

거룩하여라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 


                     - <바지막 줍는 사람들>전문



시인은 천도복숭아 빛깔로 포구를 물들이는 석양의 시각적 이미지를 저녁 종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로 치환했다. 첫 행에서 시인은 저 유명한 밀레의 만종의 무대가 되는 프랑스 바르비종(Barbizon) 마을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삭 줍는 여인들에서 추수하면서 땅에 흘린 이삭을 줍는 여인들의 모습과 만종에서 부부가 아는 분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오버랩하며 포구에서 호미 든 아낙네들의 옆모습과 등치시켰다. 바르비종 마을의 일상적 풍경을 종교적 분위기로 심화시켜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밀레의 그림에 대비시켜 조국의 바닷가 이름 모를 호미 든 아낙네들이 엎드려 바지락을 줍는 모습을 무릎 꿇어 개펄에 입 맞추는 진실의 순간으로 포착, 생명의 뜻이라는 진실의 과녁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모르는 분에게 바치는 기도로 정의했다. 바르비종 마을의 부부여인들처럼 서양의 기도문을 알지는 못하지만, 삶에 대한 간절함은 시인의 조국 작은 포구의 아낙네들에게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동서양 문명을 성찰하여 가슴으로 이해하는 문명 경계인만이 부릴 수 있는 묘미다. 아는 분에게 건 모르는 분에게 건 그 간절함은 동일하다.



소래포구 어딘가에 묻혀 있을

추억의 사금파리 한 조각이라도

우연히 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속셈을 슬그머니 감춘 채

몇 컷의 흑백풍경을 훔치러 갔다

가을은 서둘러 떠나버리고

미처 겨울은 당도하지 않은

서늘한 계절의 어중간

버젓이 갯벌 생태공원으로 둔갑해 있는

옛날 소금밭에 들어가서

찰칵, 찰칵, 찰칵,

사정없이 풍경을 자르는

재단사의 가위질 소리에

빼빼 마른 나문재들이 어리둥절

몸을 웅크렸다

시커먼 버팀목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소금창고와

버려진 장난감 놀이기구 같은 수차가

시들어가는 홍시빛 노을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

마른 뻘밭에 엎드린

나문재들의 흐느낌 소리를

엿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을 베끼러 갔다가

오히려 풍경의 틀에 끼워져

한 포기 나문재로 흔들리고 말았음이여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전문 




이 시의 화자는 더 늦기 전에 사라져가는 옛 풍경과 추억을 사진에 담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소래포구에 간다. 그런데 생태공원으로 버젓이바뀐 옛 염전자리에서 마른 뻘밭에 엎드린 나문재들의 흐느낌 소리를 뜻하지 않게 듣게 되면서 그 하찮은 생명체와 교감을 하게 된다. 화자는 갯벌에서 자라는 해초, 나문재라는 미소한 생명체에 상응하기 위하여 객체인 풍경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한 포기 나문재로 흔들리는풍경의 일부가 된다. 바닷물이 드나들지 않는 마른 뻘밭에 남아있는 나문재는 이제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가망이 없는 시한부 생명체다. 생태공원으로 둔갑해 있는 옛 염전 자리에 남은 소금창고, 수차...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그래도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은 나문재 뿐이다. 그런데 시한부 생명체가 비단 나문재 뿐일까? 인간도 살아있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지구라는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시인은 보존과 개발이라는 일상적 화두에서 출발하여 우주의 비밀에까지 시선의 지평을 확장했다

   

무게 없는 사랑을

달아보고 또 달아보느냐

늘 입속에 말을 우물거리고만 있는

나 같은

반벙어리 보라는 듯

영종도 막배로 온 중년의 사내 하나

깻잎 초고초장에

비릿한 한 움큼의 사랑을 싸서

애인의 입에 듬뿍 쑤셔 넣어준다

하인천역 앞

옛 청관으로 오르는 북성동 언덕길

수원집에서

밴댕이를 먹으며

나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그렇지 그래

사랑은 비릿한 한 움큼의 부끄러움을

 남몰래 서로 입에 싸서 넣어주는 일이지...... 


                         -<밴댕이를 먹으며> 전문


밴댕이는 사실 고급 횟감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에서 두루 잡히지만 순무와 함께 인천의 강화 특산물로 손꼽힌다.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말끔한 신사숙녀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서민 대중의 먹거리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신록이 무성하던 늦은 봄 어느 주말 화자인 는 수도권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온 연인과 데이트를 한다. 동인천역에서 만나 오밀조밀 벼룩시장 닮은 지하상가를 지나 터진개신포시장에서 점심으로 만두를 함께 먹었다. 그리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벚꽃이 이울어가는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앞을 지나 저 멀리 뱃고동소리 울리는 서해바다를 보며 단둘이 걸었다. 팔각정에 올라 서해를 오가는 크고 작은 배를 보며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잴 것이 많은 는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한 채, 하인천역에서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선다. 뒤늦게 아쉬움에 잠긴 나는 북성동 언덕빼기를 올라가다가 수원집에서 밴댕이를 안주로 쓴 소주를 혼자 들이킨다, 자신의 소심함을 자책하면서. 그때 작업복에 땀 냄새를 풍기며 영종도 막배로 온 중년의 사내 하나가 애인과 함께 식당에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늘 입속에 말을 우물거리고만 있는 나 같은 반벙어리 보라는 듯’ ‘깻잎 초고초장에 비릿한 한 움큼의 사랑을 싸서 애인의 입에 듬뿍 쑤셔 넣어주는 장면을 목도한다. 아아. 이 얼마나 단순, 우직하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남자다운 몸짓인가? 북성동 언덕길은 인천에서 한 세기 전 중국 산동성 출신 화교들이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했던 곳이다. 서민들 삶의 흔적이 짙게 밴 우리나라 짜장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우리 젊은 날의 익숙한 데자뷰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고 잴 것이 많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백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가방 끈 긴 백면서생인 를 블루칼라 그 중년사내가 벼락같이 일깨운 것이다. 사랑에는 무게가 없다, 진실이냐 거짓 또는 환상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눈 쓰린 땀방울 훔치며

훔치며

걷고 또 걸어서

가까스로 다다른 땅 끝엔

언제나 아픈 외발로 디뎌야 하는

낭떠러지뿐


한 줌의 소금을 위해

한 가마니의 가난을 위해

우리 모두는

해가지지 않는 수차 위에서

제 그림자를 밟고

또 밟는 걸까


땡볕 아래

눈 쓰린 땀방울에 젖어 걷는 자여

그대 부질없는 인생

한없이 바닷물을 퍼 올리고

또 퍼 올리노라면

언젠가

열명길에 들어

눈물로 빚은 소금 한 부대는

내놓을 수 있으리 


                                                 -<수차水車 위의 생>전문


누구라도

밀물 드는 저녁 갯벌에 서서

나문재 밭을 보거든

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

바라보지 말 일이다


가쁜 숨 몰아쉬며

익사하는 태양이

각혈하듯 검은 피 쏟아놓아

갯벌이 팥죽으로 어두워진 뒤에도

나문재 뜯으러 간 어메

영 돌아오지 않아


단발머리

 깡마른 막내 고모의 등에 업혀

옴마한테 얼릉 가아,

옴마한테 얼른 가아,

보채고 또 보채는

새까만 코흘리개 하나 있었으니


배고파서

부엉이 새끼같이 눈 껌벅이는

한밤중

쉰 나문재 몇 줄기

씹어 삼키고서야

가까스로 잠들었으니


꿈속에 무시로 떨어지는 별똥별들

하얀 튀밥 되어

머리맡에 수북히 쌓여갔느니


누구라도 밀물 드는 저녁 갯벌에 서서

나문재 밭을 보거든

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

바라보지 말 일이다 


                                -<나문재>전문


<수차위의 생><나문재>는 동전의 양면이다. 사실 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 가진 것 없는 인생의 고단한 삶의 서사이자, 각자도생 시절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지금 여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등장인물은 나무 그늘 한 점 없는 해가지지 않는 수차 위에서 제 그림자를 밝으며눈물로 빚은 소금처럼 터무니없이 짠 일당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염부鹽夫인 가장과 먹을거리 없어 물 빠진 갯벌에 나문재 뜯으러 가 돌아오지 않는 어메새까만코흘리개, 그리고 그의 단발머리 깡마른 막내 고모’, 이렇게 네 명이다. 이 중 누구도 배고픔과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염부는 수차에서 내려와도 마음 놓고 쉴 곳도 없는 처지다. ‘밀물 드는 저녁/익사하는 태양이/각혈하듯 검은 피 쏟아놓아/어두워진 뒤에도영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메는 필경 밀물 드는 갯벌에서 익사했을 것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로 유명한 인천의 바닷가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갯벌에서 해산물 채취에 열중하다 보면 소리 소문 없이 갯골을 가득 채우고 부지불식간에 높아지는 바닷물 수위를 너무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갯골을 소용돌이치는 빠른 물살 탓에 헤엄쳐 건너기도 쉽지 않다. 시인이 나문재 밭을 그저 붉게 깔린 바닷가 꽃밭쯤으로 바라보지 말 일이다라고 한 이유다. 해가지지 않는 수차 위에서 제 그림자를 밟고 또 밟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파른 언덕에서 영원히 큰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sisyphus)의 형벌만큼이나 희망 없이 종종거리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우리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시들의 주된 정서는 서양 기독교의 구원 메카니즘이라기보다는 동양 불교의 윤회 기제에 더 가깝다. 이승에서의 삶의 진실은 저승으로 건너가는 열명길에서 그 보상으로 받은 소금 한 부대라도 자랑스럽게 내 놓을 수 있을 것이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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