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9호/신작시/조희진/졸편卒篇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조희진
졸편卒篇
공감대가 점점 비대해지고 있어요 (공명통을 가진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해요!) 매끄러운 입술을 가진 절대동굴 속이예요 지상도 지하도 아닌, 밭은 공기 같은 나도 하나의 공동체죠 노출되지 않는 여기의 기후에 대해선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요 온도도 안전해요 단독 입수한 사건을 최초 발설하는 자의 호기로움은 너무 은밀해서요 방부처리 잘된 진짜단어들에게 자꾸만 의심이 섞여요 이해를 앞세우자, 다짐들이 빈번해지면 나는 해설의 진화를 숭배하기 시작해요 입술의 형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출구는 오직 하나 뿐 ‘엎지르다, 저지르다, 앞지르다’ 따위에 매료되어 성급했던 형들처럼 목숨 걸진 않아요 때문에 난 무한 겸손해지죠 결국, 우리들 뿐이예요 몰래 터지는 자동플래시의 피사체로 줄줄이 끌려 나오는 건, 문양과 크기가 똑같은 튜브형 꽃다발 하나씩 목에 건 선수들처럼, 단단하게 꼬여진 매듭처럼 말이죠 동굴 밖 기후는 기복이 참 심해서요 금방 흩어지기에 충분한 날씨예요 햇빛 속 무한한 미스테리는 아마 번식의 습성과 빌미를 투성이째 가졌을 거예요 두 손으로도 가려질 순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잠속에 널브러진 유기 견 한 마리와 동남아적 그물침대 하나, 마련할까 해요 그 입술로 감춰진 동굴이 스스로 허물어져 현실과 맞닿을 때 비로소, 이해의 문文들이 곳곳 열릴 테니까
블랙데이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도 나는
호루라기 부는 법을 몰랐지
일탈을 꿈꾸다
평상심을 잃어버린 네가 결국
날짜변경선을 이탈하고 말았어
청동의 날개를 퍼덕이며
야광의 눈을 번득이며
칠면조처럼 뛰쳐나갔지
일곱 빛깔의 네 몫을 거느리고
영원히 썩지 않을 냉장고 속을
빠져나갔지 철조그물 같은 소문만
무성하게 걸친 채, 주피터 너는
애완용도 식용도 아니었어
네 이름은 언제나 주피터야
내 무뎠던 감정선을 따라, 검은 색
꽃 배달 봉고 차가 지나간다
어두운 골목길을 명징하게 밝히려
드는 목공소 기계 돌아가는 소리,
끌려가던 시간들이 돌연 멈춰 서
바람결에 들려온다 네가
북극여우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밀폐의 공간에서 바이올린 흐느끼듯
온몸으로 알을 낳아 품었다는,
상승기류를 타고 입방아처럼
끓어오르다가 다시 하강 한다
너를 길렀던 냉장고가 다시
크르렁 거리고 있어
냉장고 비린내가 점점 심해지고
차가운 고민들이 깊이
개입하는 중이야
반의적 냉장고 문이 열리고 있어
오늘 분량으로 냉동된 블랙베리
똑같은 분량의 다른 새벽을 돌리고 있어
빠르고도 조밀한 습관성이 흔들리고 있어
중심은 흔들리며 돌아가는 중에는
결코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거야
주변의 모든 중심들이 휘말려들고 있어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비로소 불어 봐
만 번도 더 불어봐
핏줄이 도드라지고 목에서 단내가 나
봐, 그래도 응답이 없지?
**약력:2013년《시산맥》으로 등단.
- 이전글59호/신작시/김청수/늙은 의자 외 1편 16.08.29
- 다음글59호/신작시/이세진/석 잔의 술 외 1편 16.08.2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