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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신작시/김태일/지공선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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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태일
지공선사
그는 한마디 말로 묵직한 세월을 끌었다.
뻣뻣하던 시간도 세월에 젖어 숨이 죽었다.
오늘도 조반을 거른 아침이 경로석에 앉아
칼칼한 목으로 출근하는 구두를 세고 있다.
갈 곳은 없지만 가야 한다.
허공과 마주앉아 넋두리하고
자박자박 추억이나 밟으면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를 가르친 건 넉넉한 시간이었다.
마음의 너비와 생각의 깊이는 별 쓸모없었다.
몇 마디의 말과 몇 푼의 돈이 필요했다.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그를 꾸미던 장식이었다.
오늘도 허전한 세월이 지공카드 하나씩 들고
삑 삑 회전문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깊고 어두운 곳으로 줄지어 내려가고 있다.
“지금 **,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눈 감은 지하철
지하철 경로석은 지공선사들로 만석이다.
노인이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노인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
일반석은 휴대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다.
도착역을 알리는 차내 방송이 나온다.
승객 몇이 눈을 뜨고 출구로 가 선다.
중년이 둘러보다 엉거주춤 앉는데
젊은이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다.
아기 안은 아낙이 반대편 출구에 선다.
아무도 아낙과 아이를 쳐다보지 않는다.
누구도 노인과 눈을 맞추려하지 않는다.
오늘도 지하철은 제때 와서 제때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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