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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신작시/이희은/장미가 취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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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희은
장미가 취했다
우리, 건배, 건배,
담장 위 늙은 장미가 술잔을 들면
싸늘한 바람의 혀도
입술 끝 울음을 한 장 한 장 뜯어냈지
손잡이가 없는 난간처럼 아찔하게 밤이 깊어가고
깨진 술병 모서리엔
가시들이 불길하게 돋아나곤 했어
장미의 시간은 멈춘 지 오래,
지금은 놓아버리기 가장 좋은 때,
늑골 같은 계단에 앉은 장미도
눈송이를 섞어 마시며 건배, 건배,
이젠 바람으로 태어날 거야
한 번도 끝까지 부르지 못했던 노래
가볍게 완성해낼 거야
마지막 잔을 넘기기도 전에
고개를 꺾고 잠이 들었지
계단 끝에서 어둠은
석고붕대처럼 굳어만 가고
뼈도 없는 밤이 부어올랐지
달콤한 브런치
창백한 식탁 붉은 사과는
슬픈 왈츠*를 웅얼거리고 있다
한 번도 베어 물지 못했던
달콤한 유혹,
애써 외면했던 당신 눈빛이
액자 속에서 한 옥타브 더 흐려진다
폭설의 암막에 갇혀
캄캄한 시계가 스텝을 밟는다
벽 속에서 불면의 밤을 보낸 그림자들이 일어나
최후의 브런치인 듯
내일 같은 오늘인 듯
내가 건넨 사과를 받아먹는다
손가락마다 사과 꽃이 체온도 없이 피어난다
*장 시벨리우스 작곡으로 연극 ‘쿠올레마(죽음이란 뜻)’에 사용한 곡
**약력:2014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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