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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미니서사/김혜정/권태로운 루, 이혼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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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5,520회 작성일 15-07-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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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권태로운 루, 이혼을 꿈꾸다 

  
  루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거실로 나갔다. 아내는 루를 쳐다보지도 않고 빨래를 널고 청소기를 돌렸다. 얼굴에 더러운 먼지가 달라붙는 바람에 루는 재빨리 비켜섰다.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저렇게 흉한 얼굴이 있다니. 내 눈에 이상이 있었나, 어떻게 저런 여자와 결혼을 했을까. 루는 십 년 전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헤아려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에게 구걸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정말이지 한 시라도 빨리 이혼하고 싶었다. 루는 아내에게 말했다.
  “얘기 좀 해.”
  “무슨 말을 하자는 거야?”
  아내가 루를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러나 아내는 실컷 울고 난 뒤인 듯, 목소리는 잠긴 채 발음도 정확하지 않았다. 루는 이혼만 하면 다 해결될 건데, 아내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여기 도장을 찍으면 돼. 그러면 모든 게 끝나. 아주 간단하다고.”
  아내가 청소기의 손잡이를 집어던졌다.
  “당신 같은 철면피가 뭘 알겠어?”
  아내는 속에서 불끈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는 듯, 주저앉았다. 루는 아내가 다시 무언가를 집어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움츠렸다. 갑자기 목구멍에서 쓴물이 올라오고 아랫배가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야 할 지경이었다.    “벌레 같은 놈!” 
  아내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그 말 한 마디로 루는 자신의 처지가 정리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는 깜박 잠이 들었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다.
  “너 같은 놈은 죽어야 돼.”
  누군가의 주먹과 발이 날아왔지만 루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방안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방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어나서 얼른 불을 켰다. 

  방안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루는 그 와중에도 방안을 정리한 아내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괴한 여자야. 내일은 꼭 이혼을 해야지. 루는 혼잣말을 하면서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김혜정 :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루」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영혼 박물관』장편소설『달의 문(門)』『독립명랑소녀』‘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송순문학상’수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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