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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특집/시와 일상/박완호/누군가와 마찬가지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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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시와 일상
박완호
누군가와 마찬가지인,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에, 어제와 같은 길을 지나,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앉는다. 까뮈 식으로 말하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 씻고 먹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와 버스와 전철을 타고 직장에 도착, 오전 일과 후 점심을 먹고 오후 일과를 마치고 나서 퇴근길에 올라 아침에 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가는 것이 이십사 년 동안 빠짐없이 반복되어 온 나의 하루이다.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꿈을 그 동안 얼마나 꾸었던가? 그러나 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마주치는 똑같은 얼굴들. 어제 나누었던 인사를 그대로 주고받으며, 어제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하루를 견뎌나갈 기운을 서로 나눠 갖는다.
시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생활인으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노동 없이는 생존의 기본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본의 아니게 어릴 적부터 가장(家長)의 마음가짐을 지녀야 했던 나 같은 경우는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지각 한 번을 한 적이 없을 만큼 답답하리만치 충실한 편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시인의 삶을 살아간다. 힘든 일이지만, 나는 시를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곳을 벗어나는 꿈을 꾸지만, 일탈은 현실세계보다는 의식세계에서 자주 이루어진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의 틈, 바로 그곳에 시가 숨어 있다. 누군가 내게, 도대체 시는 언제 쓰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전부터 나 자신을 향해 수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시인은 매순간 시를 쓰는, 그런 존재 아니야? 그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나의 대답이다.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십대 후반에서 지금까지 나는 손에서 원고지를 놓아본 적이 없다. 남들에게서 촌스럽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다가 약간의 불편함까지 더해지다 보니 최근에는 원고지 대신 작은 노트를 챙기는 습관을 들여가는 중이지만, 원고지에 만년필로 시를 써내려가는 즐거움은 다른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뒤로는 가끔 버스나 지하철, 혹은 길 위에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핸드폰에 메모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때그때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예전에는 움직이면서 머릿속으로 시를 쓰고,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종이에 옮겨 적는 게 가능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러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보니 한순간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시상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시상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것이 시인으로서의 내 몫이다.
쉬는 날 쉬지 않기
교사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간단히 호구지책으로 취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시작한 교직생활의 첫날부터 나는 선생노릇이라는 게 단순한 호구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가르치는 일과 시 쓰는 일, 두 가지 뜻 깊은 일을 한꺼번에 제대로 해 나갈 수 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라는 사회공간이 지닌 특성 때문이겠지만, 교사생활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고의 자유로움을 잃고서야 어떻게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있을까? 허울뿐인 시인이 아니라 끝까지 제대로 된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 속에 안주하려는 또 다른 자신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한다. 마흔 넘어서야 시작했지만, 반백 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머리를 기르는 것도 교직의 타성에 젖지 않으려는 내 소박한 몸부림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학교에 있는 동안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말 그대로 선생인 나를 벗고 오로지 시인이 되려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끌어온 자신과의 싸움이 그것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해 주었다.
시는, 일상의 도처에 존재한다. 다른 시인들처럼 나 또한 일상의 틈에 깃들어 있는 시를 찾아내려 애쓰지만 그것만으로 시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특별한 집중력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게 있어 그것은 바로 쉬는 날의 교무실이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교무실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원고지를 펼쳐 그 동안 틈틈이 써 두었던 시들을 정리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러기를 이십여 년, 언제부터인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나를 으레 그런 사람으로 취급해준다. 그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펴낸 몇 권의 시집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
내 컴퓨터의 〈시뜰〉이라는 폴더에는 ‘0낙서장-1진료실-2수술실-3회복실’이라는 이름의 파일들이 들어 있는데, 원고지와 노트에 적혀 있던 시들은 일단 낙서장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각각 정도에 따라 여러 방을 오가며 완성된 한 편의 시가 되는 과정을 밟는다. 대부분은 그런 과정을 거친 후 회복실에 머물러 있다가 적당한 때에 발표되지만 어떤 것은 회복실에 있다가도 다른 방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일상
시인으로서만 겪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만은 어느 누구와도 겹치지 않는 나만의 순간을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의식적으로 되새긴다. 〈글발〉과 〈서쪽〉의 시인들, 가끔 만나 와인을 마셔가며 속을 나누는 몇몇 시인들, 시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시를 나누게 되는 벗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만나는 얼굴이라야 거기서 거기지만, 그들처럼 서로 자극을 주고받는 시인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더없이 즐거운 순간들이다.
나는 스스로를 늘 어떤 ‘경계’에 세워두고자 한다. 경계에 서 있는 동안 내가 마주치는 모든 시간은 선택의 순간들이다. 시인으로서 나는, 제 안에 시를 품은 채 한순간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으려 한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내가 꿈꾸는 시가 태어난다. 그러므로 ‘경계’는 내가 뛰어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내가 항상 서 있어야 할 어떤 지점이다.
시인에게 있어, 일상은, 그런 경계들로 넘쳐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뻔히 보이는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한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 그런 존재이니까.
너는 누구인가? 나는, 스스로 시인이다.
**약력:충북 진천 출생. 1991년 『동서문학』등단. 시집 『내 안의 흔들림』『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아내의 문신』『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너무 많은 당신』이 있음. 〈김춘수시문학상(2011)〉〈시와시학 펠로우시인상(2014)〉수상. 〈서쪽〉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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