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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특집/시와 일상/김참/아기 아빠는 어떻게 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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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64회 작성일 16-08-2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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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시와 일상

김 참




아기 아빠는 어떻게 지내나.



세월이 흘러가면 지나가버린 하루하루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쩍 더 그런 생각을 한다.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을 기록하려는 생각은 실천으로 잘 옮겨지지 않는다.

17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다. 기저귀를 갈아 주고, 밥 먹이고 분유 먹이고, 안아주고 재우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특히 우는 아기 달래는 일은 참 어렵다. 요즘 나는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가 기어와서 보채면 속수무책이다. 아기가 잠을 자지 않으면 다른 일도 하기 어렵다.


어제는 집사람이 목욕 간 사이 아이 이발을 했다. 이발소에 가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서, 몇 달 전에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머리를 짧게 잘라준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잘 잘랐다고 해서, 어제도 다시 도전을 했다. 20년 전 군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있으니까 머리 다듬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이리 저리 움직이고 기어 다니는 아이의 머리를 정리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 머리를 스님처럼 삭발했다. 목욕에서 돌아온 집사람의 도움을 받아, 아이 목욕을 시키면서 밀다 만 머리를 면도기로 깨끗하게 밀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해야 할 일이 배가 되지만 새롭고 즐거운 경험들이 많다.


요즘 나는 집사람과 아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가까운 섬에 다녀온다. 집에서 지척인 곳에 섬이 있는 줄은 몰랐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섬, 중사도. 바다에 있는 섬이 아니고 서울의 밤섬이나 부산의 을숙도처럼 강에 있는 섬이다. 중사도는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인데 김해와 부산의 접경에 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아기를 번갈아 업고 걸어서 천천히 섬을 돌기도 한다.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해가 지고 나서야 섬 산책을 할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섬을 한 바퀴 도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리지만, 시간을 재지 않고 걷다보면 금세 섬 한 바퀴를 돈다.


여름 강변 풍경은 아름답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가끔 강에서 큰 물고기가 튄다. 풀섶에서 작은 도마뱀이 출몰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기 힘든 풍경이다. 공기도 좋고 조용하기도 하지만, 천천히 강변의 좁은 길을 걷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흐린 날과 맑은 날, 비 오는 날의 느낌이 다르고, 낮과 저녁, 밤에도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흐린 날, 멀리 있는 산들이 구름에 감겨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밤에 보는 강 너머의 야경도 좋다

 

며칠 전, 함기석, 김현서 시인 부부가 아들 석현이, 딸 효림이와 함께 김해에 왔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보는 터라 몰라보게 자라 있었다. 원래는 중사도를 돌아볼 계획을 했지만, 한참 무더운 시간에 해수욕을 다녀와서 지친 터라 가보지는 못했다. 오래간 만에 가보는 다대포 한적했다. 해운대나 광안리 해수욕장과 달리 다대포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해서 한참을 걸어 나가도 무릎까지 밖에 잠기지 않는다. 해수욕장엔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헤엄친다. 아이를 안고 바닷물에 들어가 본다. 그리 싫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아이의 첫 해수욕장 나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첫 해수욕장 나들이기도 하다. 아이가 있으니 많은 일들이 첫 경험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시절을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체험한다.


오늘은 처가 식구들과 함께 휴가를 가는 날이다. 처남이 있는 거제도로 가 피서를 할 계획이다. 시집 원고를 빨리 정리해서 넘겨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집중해서 원고를 검토하기가 힘들다. 10년 동안 발표했던 180편 가량의 시 가운데 50편 정도를 골라서 정리를 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거제도 행 때문에 원고정리가 또 지연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날씨에 진도는 잘 나가지 않는데,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리한 상태로 출판사에 원고를 넘길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발표된 시를 여러 차례 고치는 편이고 아직도 고칠 게 많다고 생각한다. 읽은 원고를 다시 읽고 다시 읽기를 반복하는 것은 고역이지만 다시 봐도 계속해서 고쳐야 할 부분이 나온다

 

마감이 다가온 원고도 있고, 또 기한 내에 써야할 글들도 남아 있다. 드물게 시도 있지만 대부분 산문들이다. 요즘 나는 내가 시인인지 산문가인지 혼란스럽다. 청탁 로는 대부분의 글들이 산문이다. 가끔 만나는 문인들에게 나는 농담 삼아 시인이 아니라 산문가가 된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시든 산문이든 글을 쓸 때는 음악을 들으면 집중이 잘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주로 음악을 편인데, 아이가 턴테이블을 3개나 망가트리는 바람에 음악을 듣기가 힘들었다. CD나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며 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컴퓨터에 앰프 연결하는 일이 귀찮아 방치해 두었다. 음악을 듣지 못한지 넉 달도 넘었다. 그래서 어제 밤에 아기 기저귀를 주문하다가 내친김에 턴테이블도 하나 주문했다. 글을 쓰는 도중에 턴테이블이 도착했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컴퓨터에 턴테이블을 연결하고 아직 듣지 못한 천 여 장의 엘피 가운데 하나를 골라 들어본다. 베토벤의 피아노 변주곡들을 수록한 음반이다.


작년부터 다시, 엘피 수집에 불이 붙어 일 년 동안 이천 장 가량의 엘피를 모았다. 반 정도는 들어보았는데, 음악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랫동안 음악을 들어왔던 터라 웬만한 음악은 꿰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박스로 받아본 음반들은 대부분 듣다보다 못한 것들이다. 중고음반이지만 민트나 니어민트급 음반이 많고 가끔, 음질이 나쁜 것도 섞여 있다. 드물게 미개봉 음반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모처에서 처음 대량으로 구입한 클래식 음반이 기대 이상이어서 이런 저런 곳에서 엘피를 모으고 있는데 가끔 깜짝 놀랄만한 음반이 걸릴 때도 있다. 재즈나 포커 음반들 가운데 아주 좋은 음반들이 가끔 나온다. 며칠 뒤부터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음반들을 천천히 들어보며 혹시 나올지 모를 월척을 기다려보려 한다.

새로 온 턴테이블은 스피커 내장형이라 앰프 없이도 들을 수 있지만 소리가 작다. 설거지를 하던 집사람이 볼륨을 높여보라고 하지만, 앰프를 옮겨와 턴테이블에 연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게다가 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오디오 장비를 설치하려면 또 아이가 기어와 훼방을 놓을 것이다. 제대로 된 음악 감상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아내는 설거지를 마치고, 나는 이 글을 쓰고 거제로 출발해야 한다. 벌써 오후 2시다. 아직도 출발을 안 했냐고 전화가 벌써 여러 통 왔다.

    


 

 

**약력: 1995문학사상등단, 시집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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