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59호/특집/시와 일상/권정일/시와 일상, 그리고 일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795회 작성일 16-08-23 12:58

본문

특집

시와 일상

권정일





시와 일상, 그리고 일탈

                                   

,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사자의 서

늦은 아침, 내가 내 존재를 향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컴퓨터 전원을 켜면 화면을 장식하는 이 일행의 문장, 드디어 내 영혼은 상심하지 않는다. 원두(케냐aa)를 드립해서 한 모금 마시며 클릭을 한다. 와의 첫 대면이다. 아침을 어슬렁거리다 바다를 내려다본다. 우주 대한민국 부산의 서쪽 맨 끝 바다는 표정이 다양하다. 해안선의 레이아웃이 절묘하다. 바다의 계곡이라 했던가. 그 해곡(海谷)은 어디쯤일까. 모래톱이 파도에 말을 거는지 그 주위 풍경이 잠시 소란하다. 아마 모래톱 저편 유난히 푸르게 보이는 저곳일 거야. 오래 바라보면 익애(溺愛) 하고 싶어지는 를테면, 바람이 많은 날 바다의 입술에 발목을 물리는 날에 그렇다. 안개가 지천이다. 한치 앞만 보이는 날이 때때로 있다. 안개보다 조금 더 때때로 빗방울이 바다와 몸을 섞는다. 바다에 눈 녹듯이 쌓지 말고 풀고 살라고 오륙년에 한 번 정도 눈()이 바다에서 요절한다. (부산은 눈이 귀하다.)

이런 배경 속에서 나는 시시콜콜 (, call, call) 한다.

곧이어 시시껄렁해지기도 하지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나와 9층 높이에서 생각들과 말들을 부리며 아옹다옹 살아간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서정적인 잠언과는 상관없이 어느 땐 살아내고 있다. 가 웃어주지 않을 때, 균형 잡힌 문장 하나 오랫동안 얻지 못할 때, 또는 무언가에 분노하고 싶을 때 일정기간동안 자발적 고립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시인은 비논리적으로 연민하고, 시인정신은 논리적으로 분노하는 거야그럴싸하게 당분간을 보내곤 한다. 누구나 가슴 찢어지는 아픔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고통인 왼손 두 번째 손톱에 생긴 거스러미에 방해 받는다는 사실에 망연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이 내 마음 가장 연한 부분을 건드릴 때면, 부지런히 밥을 먹었고 그리고 부지런히 늙는다고 요즘은 시에게 투덜댄다. 시는 말이 없다. 나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데 중독되는 거 같은 불안을 사포질하여 내 내면의 타나토스와 화해를 신청하기도 한다. 아주 가끔이다. 이럴 땐 가 나에게 서간집이나 소설 내지 시아닌 읽을거리를 펼쳐준다. 죽은 자들이 남겨놓은 음악, 경전, 사상, 건축양식, 도자기, 언어 등등에 중독되는 밈(Meme)의 유전자를 나는 가지고 있다. 서재에서 뽑아든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 이미 밑줄이 그어져 있다. “자네는 자네의 불행 중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야나는 다시 밑줄이 그어진 페이지의 한쪽 귀를 접어 책꽂이에 꽂는다. 시는 종종 나이면서 내가 아닌 척 딴전을 부린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펼쳐준다. 시집 곳곳에 거주하는 고통을 꺼내보다가 나는 나에게 절망한다. 내가 좋아하는 시집 속 시인의 고통은 거의 나와 같은데 내 시집 속에서 삐죽 고개든 내가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고통은 왜 이렇게 비루하지?

바다는 지금 썰물의 시간, 떠난 것들이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틈을 타 낮술을 한 잔 마신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를 모며 웃어보라고 간지럼을 태운다. 낮술의 위력이다. 강아지야, 네가 갖고 있지 않은 거울이 나에겐 있단다. 이 망할 놈의 거울 때문에 울컥울컥 뜨거워진단다. 아무렇게나 아름다운 시간을 거울에 비춰본다. 나를 함부로 방치하는 것이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지도 몰라, 이런 시시한 생각들이 읽혀지기도 하고 쓰여지기도 한다. 지루한 시의 나날이라고 생각할 즈음,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는 인사말 생략하고 지금 어디야?” 로맨틱하게 물어온다. 나도 모든 걸 생략하고 내가 그 지금, 나는 외투를 집어 드는 사람이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사르트르는 잠시 서랍에 넣는다.

나의 소울 뮤즈여! 나는 당신에게 Belong 하기 위해 외출을 준비한다.

 

,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자여사자의 서

일탈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상자 밖으로 나가라. 창의성을 살해하는 관습과 인습을 깨라. 꿈꾸는 것은 일탈이 아니다. 일탈은 행동이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예술의 유일한 규칙은 일탈이라고, 제한된 존재인 나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다. 이윽고 일탈의 시간이다. 지금부터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산다. 말인즉슨, 가사망(家事忘)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드뎌, 술시가 왔다. 자유분방한 카오스를 툭 열어놓고 그 혼돈을 낯선 시선으로 천천히 채우면 된다. 나는 낯선 곳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낯선 기호들이 나를 힐끗거리고 있다고 느끼지만 상관없다. 여기에서 하나 명심해야 한다. ‘타인은 그냥 내버려 두어라그러면서 나는 나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좋은 시인은 못되지만 좋은 사람임은 분명해.” 술잔을 부딪치며 모두에게 공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술자리에서 중요한 건 술이 아니라 술잔을 부딪치는 횟수야.” 짝짝짝 박수소리도 경쾌하게 엔돌핀에 취기가 오른다.


사람은 사람들로써 산다. 내가 가끔 하는 일탈의 기본 모토다. 서로 조금도 틀림이 없이 꼭 들어맞는 사람들과의 계합(契合) 역시 일탈의 기본 규칙이다. 일탈도 리듬이 있어 흐르는 것들은 흐르는 것들끼리 어울리고, 몽돌은 몽돌끼리 몽돌몽돌 어울린다. 우울할 때 우울한 마음으로, 기쁠 때 홍안의 미소로, 외로울 때 외로움과 하나가 되는 외로움으로, 초라할 때 그냥 초라함 그 자체로, 내가 나를 보여지는 그대로 보고, 내가 너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일탈이고 완전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이미 순간에 도달해 있는 것. 지금을 살고 있는 것. 달리 말해 싸고 누고 웃고 입고 먹고 눕는 이 하찮은 일상이 여우같은 의심만 없다면 불법(佛法)이라고 부처님이 아주 쉽게 말씀하셨다는 것. 여기 지금에 순응하는 것. 순간을 잘 사는 것이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것이라고 개똥철학을 종합선물세트를 자랑하듯 뒤적거리면 새벽이다. 그리고 취한다.


이제 다 보인다. 비릿한 자갈치 꼼장어에 술 취한 그대도, 물 좋은 클럽에서 마음껏 춤추는 그대도, 캄캄한 어둠속에서 벽을 보면서 울고 있는 그대도, 늦은 밤까지 지식e채널을 배회하는 그대도. 오늘만큼은 한 겨레다. 왜냐고? 나는 강아지를 좋아하고 스마트 폰 약간 중독자이며 자연과 바다를 사랑하지만 생태주의자는 아니며 가끔 티브이 보는 것을 시보다 더 즐기는 , 고귀하게 태어난 자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한 사람도 없으면 살이 찌기 시작한다.”는 모모와 함께 외로운 날, 나는 살과의 전쟁은 선포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최소한 1.5명은 있다고 믿으니까.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