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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특집/시와 일상/최광임/사념의 날들, 날들의 사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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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674회 작성일 16-08-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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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시와 일상

최광임





사념의 날들, 날들의 사념



견딤의 방식에 대하여

 

1. 그렇다. 우주 공간에 완전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 그 자체로 완전하다 여기는 것일 뿐이다. 그 개체들은 우주 공간에 생존하기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자신을 진화시켜가는 것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생존방식이란 끊임없는 구속의 연속인 셈이다. 그것이 생이다. 완전한 상태에서 와 불완전하게 존재하다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주에서 왔으므로 우주로 돌아가는 일인 것인데,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존재의 구속에서 벗어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육체가 시들어가 가는 대신 빼곡한 씨들을 여물게 하는 가을 해바라기는 사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로운 완전의 세계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다. 바로 모든 존재를 허물고 낳기도 하는 자유로운 시인의 시어 짓는 행위와도 등가를 이룬다. 하니, 그대여! 설령 지금 삶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새로운 무엇으로 가기 위한 한 과정이라 여기시라. 잘 살기 위한 방향을 향해 부단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 여기시라.

 

2. 사람의 눈은 같다. 내가 보는 걸 당신도 보고 당신이 보는 건 그 누구도 보게 된다. 그 똑같은 세상이 천차만별로 보이는 것은 결국 형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다. 별개의 개체들이 모여 집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개체들 간의 상호작용이 하나를 이룬다는 인식일 때 우리는 힘듦도 견뎌낼 수 있다는 말이다. 벽과 담쟁이의 관계는 개별적 관계이다. 개별적 존재로 보게 될 때 벽은 담쟁이가 귀찮은 존재이며 담쟁이는 벽이 가팔라서 야속하기만 한 대상이 된다. 인식을 바꾸게 되면 벽과 담쟁이의 상호작용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낸다.

, 가장 두렵고 힘든 일은 한고비 또 한고비 오른 벽의 끝에서 내가 나를 걸고넘어지는 내 안의 벽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내 안의 나를 경계하며 오르는 일, 벽을 터 삼아 담쟁이가 사는 법이다.

 

3. 시인이라면 이 정도의 배포는 지니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이 정도는 품을 수 있는 오지랖을 지녀야 하지 않겠나. 아무도 탐내지 않아 소외된 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너무 높거나 낮아서 밥이 안 되는 것들, 정겨운 눈으로 품어주는 아량쯤은 기본으로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모두들 돈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갈 때 시인은 돈 되지 않는 것들 죄다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 유유자적, 구름처럼 하늘처럼 무심히 세상사 바라볼 수 있는 우주만한 눈알 하나면 족하지 않겠는가.

돈을 좇아 살아도 100년 안팎이요, 하늘, 구름을 자산 삼아 살아도 100년 안팎인 생에서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없는 법이니, 현물로 가득 채워진 생에게 어찌 저 하늘, 저 구름이 와 담길 수 있겠는가. 그런 당신이 고작 돈 하나를 가질 때 이미 우주를 품은 이는 시인이리니.

    

 

 

 

사랑의 방식에 대하여

 

 

1. , 그렇지. 이 마음이지. 이렇게 흔들리는 게 마음이지.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도 아니지. 흔들려야 마음이고 사람이고 사랑이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잖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산 것이 아니지. 살아 있으니 움직이는 것이지. , 누가 민들레 홑씨들을 생명 다한 것이라 여기는가. 씨나 품고 훌훌 떠다니다 다음 생을 준비하는 것이라 여기는가. 이렇게 살아서 사람처럼 살아서 펄펄 움직이는 것을.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고, 철천지원수처럼 헤어지기도 하고 금세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하는 것을. 저 홑씨들도 사람 같은 마음이 되어 또 한 사랑을 꿈꾸는 중인 것을.

사랑은 그렇게 오는 것이지. 이것저것 따지고 젤 사이도 없이 오는 것이 진짜 사랑이지. 어떻게 사랑이 계산을 하나.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 홀딱 반할 사람 만나면, 나 좋다는 님 만나면 사랑하는 거지. 이 버겁고 더운 한 세상 사랑하며 사는 거지.

 

2. 그래, 그런 순간이 있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멀리서 하나 둘 불이 켜지고 그리고 어쩌다 그곳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있는 나는, 문득 막연하고 쓸쓸하고 외로워지는 것이다. 더욱이 내가 그곳으로부터 떠나왔거나 내 사랑이 나를 두고 떠나간 곳이라면, 그곳에서 깜빡깜빡 불들이 켜진다면, 그렇게 저녁이 오는 시간이라면 눈물이 흐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별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눈물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게 된다.

지상의 모든 이별은 먼저 슬픔이고 되고 아픔이 되었다 나중 이별이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이미 한 사람이 어두워졌거나 어두워지고 있는 중이라면 저, 저녁 속에서는 눈물에 불이 켜질 수밖에 없다.

 

3. 사람은 일생 중 단 한 번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의 행위는 저 무의식의 세계에나 남아있는 아슴한 기억을 찾아 떠나는 상상여행과도 같다고 한다. 이상형의 상대를 내 어머니 닮은 여자에게서, 누이 닮은 여자에게서 찾는 보편적 습성을 생각해 본다면 쉬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바로 무의식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인데 그 무의식 속에는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이 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있던 태아시절이야말로 분리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의식 이전의 온전하고 완벽한 사랑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또는 그와 반대로 심장이 멈추고서야 끝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무의식의 아슴한 기억을 길어 올리며 당신이라는 이름을 화인처럼 새기고 사는 일, 살아있는 동한 할 수 있는 사랑인 셈이다.

 

      

**약력: 전북 부안 변산 출생. 2002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도요새 요리. 현재 시와경계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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