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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박연준/기다리는 자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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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연준
기다리는 자세
무릎이 하염없이 허공을 앞지를 때
입속 강이 말라 메아리가 생길 때
괄호 속에 갇힌 말들이 희미해지다,
사라질 때 불리지 못한 이름이
수면 아래로 떨어져
소용돌이가 될 때
물결이 물결과 부딪쳐 구름의 얼굴이 찌그러질 때
밤이
반복되다
어그러지며 쌓일 때
허공을 점령한 높이가
한들한들
무너지려할 때
찾는 사람은 유리컵이 되고 기다리는 사람은 조약돌이 되어
깨지거나 깨지지 못할 때
어떤 삼각형은 동그랗다 어떤 이름이 웃는 것처럼
어떤 장미는 애꾸고 어떤 버드나무는 울지 않는다
어떤 손목은 기도하다 꺾이고 어떤 욕망은 가난하다
어떤
강물은 날아가고
어떤
꽃들은 사악하고
어떤
죽음은 머무르는데
어떤 소란은 빛나지 않는다
흡혈
꽃밭에 앉아 이빨을 기른다
서로가 서로를 몰라보는 난장 속
꽃들은 자기들 얼굴을 어떻게 구별할까?
빨강, 분홍, 자줏빛 눈 코 입
허공에 떠다니는 봄의 얼굴들
깨물어, 마셔야겠다
마시고 난 뒤 어떻게 할까?
핏자국만 남은 꽃밭, 휑할 텐데
자라난 이빨을 뚝뚝 끊고
누워버릴까?
눈코입도 막고
항문도 틀어막아
종일 꽃피 흐르도록
진저리치며 휘몰아 돌도록
누울까,
누워버릴까?
사방에서 날아드는 벌들에게
냄새 맡은 독사들에게
몸을 통째로 맡기고
큰 벌 받을까?
*박연준 :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으며 산문집 <소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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