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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황구하/요강단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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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구하
요강단지
서문시장 할매 보리밥집은 사시사철 드나드는 손님이 남녀노소 녹음방초인데요 철 따라 푸짐하게 나오는 상추, 부추, 고사리, 호박, 당근, 콩나물, 무나물… 깨소금 훌훌 얹어 오르는 보리밥에 겉절이 한 쟁첩, 비지 한 사발, 고추장과 강된장 한 종지, 거기 숭늉 한 대접 구수한데요 그 집 문전성시 이루는 비결 어디 있는지 손님들 물결 따라 한 귀퉁이 겨우 얻어 앉아서야 알았지요 조물조물 무쳐 내놓는 뫼 산 자 나물 봉우리 진열대 아래 다소곳이 앉아있는 요강단지, 뭉툭한 손들이 당당히 건네는 밥값, 꾸깃꾸깃 주름진 천 원짜리 지전 공손히 펴서 차곡차곡 담고 있는 바로 할매의 하늘인데요 보리밥에 갖은 나물 얹어 쓱쓱 비벼먹고 트림하듯 시원하게 건너오는 밥값이 변강쇠 오줌발보다 훨씬 힘이 센가 봐요 잘 먹고 잘 싸는 게 잘 사는 거라고 그건 요강에 새겨진 목단보다 더 붉은, 밥 한 그릇의 생을 키우는 말씀이더라고요 시장기 돌면 언제라도 엉덩이 착 붙여 밥 한 끼 먹고 한세상 또 불끈 들어 올리는 일, 맵거나 쓰거나 무던하게 허기를 버무려주는 할매 손 약발인 거지요 요강에 첩첩 고개 숙이며 한철 빼꼼 들리는 국회의원, 시장, 도의원, 시의원, 온갖 선거꾼들도 손님이지만요 주머니 딸랑거리는 동전까지 꼬박꼬박 헤아리는 날품팔이 공사판 사내의 구릿빛 얼굴 가뿐 수저 들게 하는 서문시장 할매 보리밥집 그 보물단지
풍물시장
찬바람 혹독할수록 시장은 시끌벅적하다
상주 풍물시장 간이정류소 버스 한 대 기우뚱 서자
알록달록 꽃 몸빼 노파 뒤뚱뒤뚱 보퉁이에 얹혀 내린다
파카 속에 목을 집어넣고 있던 장꾼들
우루루 몰려가 보퉁이 끌고 당기고 장이 익는데
단단히 여미고 쟁인 보통이 통째로 풀어져
호두며 대추 땅콩 곶감들 푸지고 자지러지고 통통통 튄다
지난여름 울울창창 매미울음소리에 귀 닫고 웅크리다가
결국은 제살 찢고 쭈글쭈글 감기는 소리 익혔으리라
햇빛도 빗방울도 가벼이 떠나보내고
온몸 땅심으로 다지는 풍물소리
왁자한 장꾼들 발과 손 사방팔방 흩어진 시장을 훑는다
바닥과 셈하는 흥정이 내고 달아 맺고 풀어준다
진눈깨비도 바람 추임새 따라
얼쑤얼쑤 춤추는 한낮
무르팍걸음으로 기어가는 노파의 굽은 등이 쿨럭쿨럭 또 풍물을 친다
*황구하 : 충남 금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 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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