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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김효선/하느님의 여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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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효선
하느님의 여자
칼국수 집 문을 밀고 중년의 여자가 들어선다 겨울인데 봄을 입고 있는 여자, 운동화를 반쯤 벗어난 발, 허공을 향한 눈동자, 하느님 말씀을 들어보렴, 들리지? 그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거지 네 발바닥이 새까매질 때까지 놀이터에서, 저녁이면 문을 꽁꽁 잠그고 하느님을 기다려야 해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딨냐고? 불안해 하지 마 하느님이 곧 우리를 데리러 오실 거야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 아버지가 어디 계시냐고? 하늘에 계시잖니 칼국수보다 먼저 자판기커피를 뽑아 마시는 여자 너는 뿌리가 없어 곧 허물어질 거야 하느님은 알고 계시거든 양 많은 칼국수가 나왔다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어쩌란 거니 하느님이 보고 계시잖니 면발이 불고 있다 여자의 어깨가 퉁퉁 불고 있다 내가 모르는 저 여자는 누구인가 아득한 곳에서 지워진 발자국 소리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들이키며 그 여자, 웃는다
안개가 자라는 시간
밤바다에 갔었다
파도와 자맥질하는 안개의 혓바닥
닿을 듯 말 듯
너는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비늘의 깊은 모서리
그렇게 건너온 사랑
그렇게 사라지는 사람
물이 고인다
고인 물에 잠겨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우체통을 버리고 공중전화를 버리고
안개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가 버린 시간들로 안개는 더 강하고
더 지독하게 우리를 닮아간다
결국 안개가 어둠을 이긴다
슬픈 날은 또 슬프게 지나간다
왈칵,
선홍색 뒤에 감춰진 어둠의 주기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슬픈 예감
헛다리를 짚을 때마다
저녁은 나비가 된다.
날개를 잃어버린 안개가 된다
어둠에 치켜든 눈썹 안으로
깊은 안개가 고인다
*김효선 : 2004년 계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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