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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전숙/환지 - 어떤 탈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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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전숙
환지(還紙)*
-어떤 탈북
십팔, 낭랑한 나이에
씨팔, 욕이 되었다
바람에 찢기고 바위에 눌리고 굴러다니는 자갈에도 채였다
고프다는 말이
바닥을 치자
심중의 말이 등가죽에 붙어서 소리로 나오지 않았다
‘밥 먹자’는 말을 삼키는 어머니의 한숨이 낙엽처럼 흩날렸다
식.구.라는 음절에 먼지가 쌓이고 거미가 집을 지었다
물에 된장을 풀어 빙빙 도는 하늘을 달래던 밤
두견이의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몸뚱이가 식구들 석 달 치 밥이라는데
청이처럼 인당수에라도 몸을 던져야지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린 어둠이 국경을 넘는 밤
낭랑 십팔이 욕지기 같은 씨.팔.로 바뀌고 있었다
두엄 같은 입냄새가 식구들 밥값에 팔려온 앵두를 깨무는 밤
백옥 같은 한지에 먹물이 스며들었다
식.구.는 음절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가 되었다
식구들은 지금쯤
이밥에 쇠고기국을 눈물처럼 삼키고 있을까
짓누르는 바위를 굴려버리고 몸을 일으키는데
또 다른 두견이의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렸다
먹물이 스며든 몸을
맑은 눈물에 누이면
몸에서 먹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의 먹물도 남기지 않으려고
나는 마르지 않는 눈물이 되었다.
*환지(還紙): 먹물을 물에 씻어 깨끗해진 한지
건네주다
-두만강에게
세상에서 가장 맑다는 강을 찾았네
꿈길마다 나를 건네던 그 깊은 가슴
한 생을 꿈꾸다 찾은
강의 낯빛은 흙빛이었네
가슴이 얼마나 뜨거운지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가슴이 보였네
풀꽃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네
칼자국보다 아린 눈물자국이었네
나이든 풀꽃은 한숨만 내쉬다가 돌아가고
어린 풀꽃은 강둑에서 개처럼 끌려가고
별처럼 꽃잎이 다섯 장인 풀꽃은
새벽 세시에 아버지를 묻으면서도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네
강은 제 자리를 맴돌았네
무릎을 꺾고 흙탕물을 품었네
눈물보다 맑던 낯빛이 흙빛이 된 줄도 모르고
바다보다 깊던 강심이 개울이 된 줄도 모르고
강을 건넌 풀꽃은,
고비사막보다 더 가슴이 메마른 풀꽃은,
사막을 건너고 정글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서
강이 건네주고 싶은
그곳에 종이배처럼 닿았네.
*전숙 : 200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나이든 호미』 『눈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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