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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이종섶/구름 세탁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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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6,232회 작성일 15-07-1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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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종섶

구름 세탁소 


더러운 구름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우당탕탕 소리가 나서 뚜껑을 열어보면 
물방울들이 심하게 엉켜 있다 

바람 몇 스푼 더 넣고
물높이를 최고로 맞춰 다시 돌린다 

얌전하게 굴다 잠드는 구름의 보푸라기들 
블랙이 돌아가는 순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햇빛에 
별들의 그림자가 낀다 

이것을 빨아서 납품하면 돈벌이가 될까 싶어 
얼굴만 떼어내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비명버튼을 눌렀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거리며 맡아보니 
아직 빠지지 않은 별들의 상처 

밤마다 구름을 세탁하면서 
한 주먹씩 넣어야 하는 푸른 빛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면 마찰에 의해 떨어지는 유성우 
눈이 멀까 싶어 급히 얼굴을 빼내는 순간 
두상은 멀쩡했으나 
속은 물로 가득 차 버렸다 

미처 꺼내지 못한 표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일 때 
부시시 울리는 전화벨 
눈물을 배달해 달라는 주문이다 

메아리가 외출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눈물 한 접시를 들고 나섰으나 찾을 수가 없다 

안개를 두드려 수소문한 끝에 
바람의 거리 끝자락에 산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공간 이동을 부르는 초인종을 누른다

어두운 침실로 데려가 돈 대신 쥐어준 바람 한 장
깡마른 별 하나가 눈물을 찍어 맛을 본다 
물기가 다 증발해버린 날은 
지상에 가라앉은 구름을 수거한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백수의 나날 

단칸방에 놓여 있는 유일한 가전기구 세탁기가
배를 비워놓고 입맛을 다시는데 
구름을 맡긴 비가 언제 찾으러 올지 몰라 

바람만 만지작만지작




그리운 서쪽나라


푸른 하늘 은하수 민들레 성좌에 
메마른 바람이 불어요 
홀씨별이 날아가 푸른 싹을 틔워요 
긴 꽃대 위에 외로운 별 하나 잉태해요 

울음 골짜기에 등을 걸어요 
바닥에 엎드려 살아가는 목숨들이 
허름한 내복을 벗어요 
마른 정강이에 부드러운 솜털을 매달아요 

겨울에는 서쪽나라에 갈 수 없어요 
봄을 기다리는 동안 
기차가 오지 않는 역에서 단잠을 자요 
계수나무를 심고 토끼들과 놀아요 

덮고 자는 신문지 너머 
문맹의 햇볕이 간지럼을 태워요 
서쪽나라에 대공황이 찾아와요
날개 없는 소문이 우주로 날아가요 

<은하철도 999> 건설계획을 세워요 
누구든 이용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새나라 새우주호
꿈의 극장 메인 뉴스를 장식해요

눈을 뜨면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 많은 나라 중에
가고 싶은 나라가 보이지 않아요

우주 비행은 시작했는데
착륙할 행성을 찾을 수가 없어
둥둥 떠돌아다니기만 해요
우주 미아라는 말은
우주학사전에는 없는 말이에요

별물이 흐르는 강으로 가요 
먼 우주를 향해 홀로 노 저어 가요 
돛대도 없고 삿대도 없다는 말은 
꾸며낸 말이에요 

서쪽 방향으로 핀 꽃들이 
하얀 쪽배를 타고 가요 
바람결에 은하수 골짜기를 지나가요 
그리운 서쪽 나라로 가요 


*이종섶 : 경남 하동 출생.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등 수상. 시집 <물결무늬 손뼈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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