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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박소란/점 한번 만져볼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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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소란
점 한번 만져볼래?
점 한번 만져볼래? 목에 큰 점이 하나 있는데
누군가를 대할 때면 얼굴이나 흐트러진 머리카락보다 점에 먼저 신경이 가고
언젠가 여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말했지
목에 점이 없는 이는 사람이 아니래 귀신이래
정말?
감색 치맛자락 나풀거리며 운동장 저편으로 달려간 단발머리는 여태껏 오지를 않아
나머지공부하는 학생처럼 남아 나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나날을 낑낑거리지 창이 드리운 휑한 풍경 앞에
사는 건 난해한 생김새의 도형 같아 나만 모르고 다 아는
세상의 내각을 구해보고도 싶었지만
점 한번 만져볼래? 목에 큰 점이 하나 있는데
신문을 뒤적이던 애인은 솔깃해져 나를 빤히 쳐다보고
정말?
목덜미 이쪽저쪽 눈짓으로 살피는 애인 드넓은 운동장 어느 구석을 기웃거리듯
뭐야 장난치지 마
애인은 이내 눈을 흘기고
심드렁한 얼굴로 구겨진 신문을 만지작거리고 어제와 내일의 파본이 이어지고
네가 온다
길바닥 어스레한 구석
피 흘리며 죽어있는 쥐
무심코 걷던 밤의 그림자들이 흠칫
물러선다 잔뜩 구겨진 모양으로
멀어진다
때때로 비틀거리며 침을 뱉으며
나는 잠시
그 흉측한 몸뚱이를 들여다본다 어떤 객기로써
불행을 연습하듯이
피 흘리며 죽어있는 쥐
불행을 연습하듯이
불행을 경도하듯이
어긋난 잇새로 악취의 주문이 터져 나온다, 그때
저기 모퉁이를 돌아
네가 온다, 제발
오지 마요 오지 마 내게로 오지 마
웃으며 손을 흔들고 너는
피 흘리며 죽어있는 쥐
비로소
불행을 시작하듯이
*박소란 : 1981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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