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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권두칼럼/장종권/홍보석의 아름다운 슬픔 독자들 가슴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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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홍보석의 아름다운 슬픔 독자들 가슴에 영원히
장종권
이가림 시인께서 떠나셨습니다. 몇 년간의 고독한 공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끝까지 시를 쓰고 정리하며 한 시대의 위대한 시인다운 풍모를 잃지 않고 홀연히 떠나신 셈입니다. 필자와는 대학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2001년 계간 리토피아 창간 시부터 상임고문직을 맡으시어 리토피아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셨지요. 이후 십 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한시도 리토피아에서 떠나지 않으시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늘 리토피아를 지켜주셨습니다. 2013년 막비시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계간 아라문학이 창간되자 여기에도 직접 편집까지 참여하시며 좋은 잡지로 자랄 수 있도록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
‘망하게 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잡지 만들 것을 권하라.’ 2001년 리토피아 창간식에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그만큼 잡지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신 것이지요. 이처럼 어려운 잡지계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아직 리토피아가 건재하고 있는 것은 모두 선배님의 지극한 보살핌과 저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리토피아의 주요 행사에는 꼭 참여하시어 성원과 박수를 아끼지 않으셨으니 어떤 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항상 따뜻한 미소와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셨지요. 이성을 빌미로 하여 논리적이거나 냉정한 말씀도 전혀 하신 적이 없으시지요. 누구에게 섭섭하다는 말 한마디 해보셨을까요. 형편 없는 작품이라는 혹독한 말 한마디 해보셨을까요. 항상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지켜보고 어깨를 다독이시면서 잘 하고 있다는 말씀, 잘 될 거라는 말씀만 변함없이 해주셨지요. 커다란 힘이었습니다. 무모한 뱃심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투혼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 잊지 않고 앞으로도 리토피아가 좋은 잡지로 자라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텅 빈 가슴 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지난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나 혼자 부둥켜 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쏟아 놓아야 하리//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아아, 사랑하는 이여/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리토피아가 시노래 보급을 위해 제작 배포한 나유성 작곡의 선배님 시 ‘석류’입니다. 선배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과 열정과 시적 정신이 가장 치열하게 박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 것입니다.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깨어지는 홍보석의 아름다운 슬픔은 독자들의 가슴에도 리토피아의 가슴에도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입니다. 가신 곳에 영원한 평화 깃드소서.
2015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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