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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임동윤/마스크 없이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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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임동윤/마스크 없이도 외 1편
임동윤
마스크 없이도 외 1편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목련은 피고 진달래도 핀다
봄은 난장이다 진달래는 산을 태우고 벚꽃은 바람을 가지고 논다
제멋대로다 바람에 머리칼 날리는 놈 머리칼 날리고
하늘에 꼿꼿이 머리를 치켜들고 달빛을 맞는 목련은 만취상태다
아아, 방종이다 봄은 참다못해 펄펄 끓는다 신열이다
그런데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마스크 없이 마중 못 하는
나는 병신, 눈 막고 귀 막고 코 막고 입 막고 산다
그래, 나에게 봄은 감옥에 피는 꽃이다 지옥의 시간이다
저 뜨락의 왁자한 벚꽃 그리고 어느새 꽃필 준비를 마친 라일락
이제 내 속으로 와서 꽃을 피우라, 꽃은 향기가 되어 코를 적시고
봄나물 향긋함으로 코를 뚫어라, 내 언어의 베란다에서 피어나라
속으로, 나는 나에게 자유를 준다 너와의 거리를 허문다
내 봄의 뜨락아 한껏 불타올라라, 이제 봄이다
아아, 마스크를 훌훌 벗어 던진 나의 봄이다
춘천에서
물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믿고 있다, 물밑에는
기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흐린 바닥과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우리가 버린 오물밖에는
입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둥둥 뜨는 입술과
이룰 수 없는 꿈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밑에는
가끔 우리가 버린 찌꺼기를 주워 먹는
물고기와 물고기의 유영 속에서 물풀이 흔들리듯
우리 허울뿐인 사랑도 믿음도
흔들리는 그만큼 늘 흔들린다, 물밑에는
그대와 내가 찾아 헤맨
아름다운 꽃밭은 없다, 물밑에는
시든 풀과 껍질들과 버려진 것들이 몸을 포갠다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는 게 뭐 대순가
물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보이지 않는 진실이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임동윤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연어의 말』, 『나무 아래서』 『따뜻한 바깥』, 『사람이 그리운 날』, 『고요의 그늘』 등. 수주문학상 대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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