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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황길엽/비오는 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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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황길엽/비오는 날 외 1편
황길엽
비오는 날 외 1편
거리를 적시는 소리
허공에서 세차게 폭우로 두껍게 내려와
골목마다 질퍽거리는 검은 그림자 쓸고 있다
낡고 비어있는 씁쓸한 시간
바닥은 머리 위에서 맴돌고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무게는 한순간 달랑거리는 방울소리뿐
아주 천천히 기계음 같은 빗소리
캄캄한 어둠이 창밖을 가득 채우고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지워진 백지가 되어
시 한 줄 쓸 수 없는 비 오는 날
시간은 잠시 멈추어 빗소리 저장 중이다
봄꽃은 지천인데
어둡게 흐르는 시간을 헤집고 하얗게 피어올린 꽃봉오리
세상을 휘젓는 바이러스전쟁으로 휑해진 거리
무심한 오늘을 채워나갈 힘들게 오가는 검정마스크
길을 열어가듯 눈으로만 간다
숨을 쉴 수도 없는 온통 검은 얼굴들
무심히 두 발로 풍경을 외면하며 간다
목적지도 없는 곳, 걸어온 길에는 검은 발자국들이 찍혔다
화사한 봄바람으로 바이러스 종식의 종이 울려야 하고
이제 환한 봄 햇살 같은 날이어야 한다 목련이 지기 전에
훌쩍 올려다보는 곳에 하얀 목련 눈부신 꽃잎, 희망이라고 쓴다
사방에서 벚꽃잎 하얗게 비처럼 내리는 거리
휘어진 길모퉁이에 수줍게 고개 내민 노란 민들레
즐비하게 늘어선 나무들의 뼈대 사이로 헤집고 내려오는 봄 햇살
바이러스 쓸어버리고 우울한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희망이 쏟아지는 날
이제 웃자
*황길엽 1991년 《한국시》로 등단. 시집 『무심한 바람이 붉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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