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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김은경/게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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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김은경/게임 외 1편
김은경
게임 외 1편
눈발이 흩날리다 쌓였어
거긴 어때
아는 길에서 미끄러질 뻔했고 체하는 음식을 먹었고
이상하게 잠은 잘 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들
격정도 없이 흔들리는 불빛들
초점이 있었을까 우리의 눈빛에도 언젠가는?
다 먹어버린 초콜릿 포장지를 접었다 편다
손에 무언가 잡히면 안심이 된다
깨진 보도블럭
눈이 덮지 못하는 시름들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놓여 있다
깨질 기미조차 없던 것들
깨진 줄 모른 채 지니고 있던 것들
이태리산인 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기어이 발견해내고야 마는
Made in China, 티눈 같은 글씨처럼
희한하기도 하지 조각 난 것은
퍼즐 맞추기 말고는 하나도 쓸모가 없다는 게
친절을 바란 것은 아닌데
믿었을 뿐인데 좋아했을 뿐인데
영원히 불가능한
Game Over
봄에 부치다
여덟 개 천 원 하는 귤을 열 개 천 원에 살 때
기대하지 않던 나무에 꽃이 필 때
울다가도 웃습니다
잘 울고 잘 웃는 내가 이렇게나 많아서
여전히 시 비슷한 무언가를 씁니다
짝이 맞지 않는 눈동자를
혀 깨물기 십상인 덧니를 사랑합니다
돌보지 않아도 웃자라
쌉싸래하고 외로운 것들이 들판에 이렇게도 수북이
동네 볕 좋은 곳에 벚꽃이 펴요
장을 봐 쑥전을 부쳐요
싸-한 쑥향은 봄그늘 냄새
날리는 밀향은 봄볕 냄새
고백이 필요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부지런히 부칩니다
한 술 두 술 들기름을 두르고
기도하는 자세로 이삭을 줍는 자세로
쑥전을 부칩니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봄을 갖다 바칩니다
*김은경 2000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량 젤리』, 『우리는 매일 헤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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