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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임곤택/집인가 아닌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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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278회 작성일 23-01-0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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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임곤택/집인가 아닌가 외 1편 


임곤택


집인가 아닌가 외 1편



저기는 내 집이었다

속이 비치면 집이 아닐 것 같지만

앓아 누운 사람 한둘 없으면 

집도 아닌 것 같지만


저기는 내 집이었다

기억하기 싫은 정도는 내 집이었다


웃음은 없었는지

겨울은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게으르게 누워 있었으므로

저 곳은 집다운 집이었다

 

집인가 아닌가

들어갈 수 없으므로 집이 아니다


집인가 아닌가

부산이든 통영이든 저기 누워 떠올렸으니

집이 맞다


돌아가는 길에 

돌아가도 좋으냐고, 그래도 되겠느냐고

물을 수 없으니 내 집이다


저곳은 내 집이었으므로

집이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별을 봅니다

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은 하늘에 있지 않은 시대에

이곳은 별이 잘 보이네요

섬 같군요


하늘은 맑고 

나무는 잘 자란다


생명은 혼란으로 당신을 옭아맨다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은하가 몇 번 다시 태어났을 동안의 긴 노동

시계는 여전히 오후의 뙤약볕


농부들의 친절함 속에 감춘 의심과 호기심

백 개가 필요하면 

사정할 때마다 한두 개씩 내어준다

배추와 상추가 그러한 것처럼

하늘과 땅이 그러한 것처럼


하늘은 맑고 나무는 잘 자란다


죽음이 많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 묶어둔 죽음이

이곳에는 밤하늘 별만큼 흔하다

그것들은 늘 다시 태어난다


햇볕이 마루에 비춘다

얼룩이는 그림자를 당신은 매만진다

거기 조용히 들어가 눕는다

머리털이 자라고 수염이 자라고 귀찮음이 자라고

노동자를 부리는 콘베이어 벨트의 공포를

사무직이던 당신은 부지런히 배운다


비가 오네

커피향 속에 녹아드네

빗방울 몇 개 팔뚝에 닿네

흘러내리네


물줄기는 죽은 것을 살리고

죽은 척을 깨우고

산과 들은 자신들만 아는 신호로

당신의 결의를 천천히 녹인다

당신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들 사이에 들어가 앉는다, 말을 건다

비구름은 낮고 검다

하늘은 맑고 나무는 잘 자란다


돌아온다, 길은 처음의 그 길이다

도시는 자연의 흉내라는 것도 알겠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친구들에게 당신이 본 자연을 그려보인다

그 그림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이다


‘근데, 잘 모르겠어……’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무도 모른다 


하늘은 맑고 밤이면 별이 잘 보인다





*임곤택 200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지상의 하루』, 『너는 나와 모르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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