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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유현아/안녕의 옥상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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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1
댓글 0건 조회 302회 작성일 23-01-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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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유현아/안녕의 옥상 외 1편 


유현아


안녕의 옥상 외 1편



바이러스는 일상을 잠식했다, 라는 

메일을 여는 것으로부터 일상은 계속되었다


입과 코가 사라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주치지 않았던 눈들과 할 수 없이 마주치고 있다

진행될 수 없는 업무를 이야기하고 눈의 기억으로 기록했다


입이 사라지고 난 후 눈의 언어를 받아적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사무실 옥상으로 어젯밤의 냄새들이 모여들고 있다

아주 오래된 시간이었으며 아침까지 이어지는 냄새였다


눈을 가리고 노래를 불렀다 

옥상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이므로

당신의 우울을 생각하며 나의 절망을 희망하는 동안

인공눈물이 바닥났다


입과 코가 사라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옥상에선

퍽퍽한 눈들의 잔상이 떠다녔다

입과 코가 사라진 다음에야 말할 수 있었고 맡을 수 있었다

온전히 인공눈물의 힘으로


늑대는 태어날 때 앞을 보지 못해 절망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라는

메일이 도착했다





살아있으니 나아갈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모든 계절이 그렇게 추웠어. 창문을 닫아도 어느 틈에선가 바람이 계속 들어왔어. 빨래는 널 수도 없었어. 눈이 오면 눈을 치워야 했기 때문에, 비가 오면 벽틈 사이로 들어오는 물기를 막아야 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것들을 집어와야 했기 때문에, 낭만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었어. 월세와 아이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집이 1층이라는 것이 기억이 안 나. 벚꽃잎 두 개가 나비처럼 죽어있어. 


빨래를 널 수 있는 마당이 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작은 창문 너머로 꽃들이 피어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20년 지하 생활이 지쳐 마당이 보이고 공터가 보이고 바람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는, 세탁기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 방 한 칸짜리 월세를 얻었어. 햇빛이 그림자를 가지고 들어오고 있었지만, 감각으로 바늘에 실을 꿰느라 하늘과 바람과 꽃과 비를 보지 못했지만, 꿈꿀 수 있는 방 한 칸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 하나 때문에, 고개 숙이고 일을 할 수 있었어. 낭만이라는 걸 상상할 수 있었지. 


살 만해?





*유현아 2006년 전태일문학상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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