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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김은아/생각은행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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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김은아/생각은행 외 1편
김은아
생각은행 외 1편
생각은행에서 시 대출을 받는다
얼마의 생각을 대출해 줄까
산책길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도토리 몇 알 줍고
TV를 보다가 덜컹 내려앉는 가슴을 줍고
책 속의 잘 키운 근육 같은 느낌을
한 입 베어 물고
잠자던 화초가 살며시 고개 내밀 때
엷은 미소로 대답한다
돌담을 넘어 오는 봄
밥상 위에 소복이 담긴 봄나물에서
나물 향기가 시를 쓴다
생각은행에서 전혀 낯선 대출을 위한
대출을 생각해 내야 한다.
와온에 노을이 지면
곧 빠져버릴 것 같은
일몰 속에 나를 가둔다
지지 못한 달이 손을 내밀고
쑥부쟁이의 환한 웃음은
거기 별처럼 고요하게 남아 있었다
물고기 비닐처럼 반짝이는 하얀 바람은
내 옷자락 펄럭이며
폐선 위에 던져진 질문 한가득 싣고
텅 빈 항아리 같은 마음을 얹어 놓았다
물 빠진 갯벌에 들어왔던 회색빛 바다 냄새
남겨진 기억들
어깨를 툭, 치고 가는 것들을 향해
솔섬 산허리에 잠시 머문
해와 달과 하늘과 바다는
와온*의 해변에서
저물어 가는 너를 보았다.
* 노을이 아름다운 순천 바닷가의 지명
*김은아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1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2019년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수상. 시집 『흔들리는 햇살』, 『흰 바람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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